내반원기&석가산기
- 최초 등록일
- 2002.06.12
- 최종 저작일
- 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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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문선의 내반원기와 석가산기 해석입니다.
목차
1.내반원기
2.석가산기
본문내용
※ 解釋
궁신(宮臣)의 집[局]이 있음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데게 천문(天文)에서 상(象)을 취하여 임금에게 가까이 모시어 규달(閨)의 금지함을 맡고 내외의 말을 통하며 음식을 조제하고 뜨락과 지개를 소재하니, 그 책임은 비록 외설하나 그 관계가 매우 중하지 않겠는가. 관정(官正)과 궁백(宮伯)은 주나라에서 비롯되었고, 황문(黃門)과 상시(常侍)는 한나라에서 처음 되었으며, 내시(內侍)와 급사(給事)는 당나라에 처음 보이었고, 내반(內班)과 전두(殿頭)는 송나라에 있었으니, 비록 그 벼슬 이름의 인혁(因革)은 한결같지 않으나 그 거처 직책이 전일한 것은 역대에 다 같았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복신(僕臣)이 바르면 감히 바르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하였으니, 그 시어(侍御)하는 신하에서는 오히려 그러하거든 하물며 중관(中官)일까보냐. 예로부터 충성과 근신(謹臣)을 스스로 지닌 자는 일찍이 복을 얻지 않은 일이 없고, 교만과 믿음으로서 괴임을 믿는 자는, 일찍이 화를 입지 않은 일이 없어 나라가 역시 이에 따라서 흥하고 망하는 것이니, 깊이 두려울 일이었다. 본조(本朝)가 건국 이래로 내시부(內侍府)를 영추문(迎秋門, 창덕궁 서문) 밖에 두었고, 또 액정(掖庭) 영항(永巷) 곁에 내소방(內小房)을 열어서 승시(承侍) 급사(給事)하는 자가 주야로 추장하는 곳으로 삼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