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자] 주시경

등록일 2002.06.11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600원

본문내용

2. 주시경 (1876 1914)
황해도 평산에서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나어려서 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다가 13세 때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어 서울로 올라왔다. 본관은 상주(尙州). 아명은 상호(相鎬). 자는 경재(經宰), 호(일명이기도 함)는 학신(學愼) 한힌샘 일백천(一白泉) 백천(白泉) 한흰메 태백산(太白山)이다.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 1898년 6월 역사지지특별과를 졸업하고 1900년 6월 보통과를 졸업했다. 배재학당시절 독립신문사에서 서재필의 언문조필로 있으면서 철자법을 통일할 목적으로 1896년 국문동식회를 신문사 안에 설립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07년 지석영이 만든 국어연구회의 회원으로 4개월간 활동했으며, 같은 해 7월 학부(지금의 교육부) 내의 국문연구소 주임위원으로 임명되어 3년 동안 국문연구안을 작성 제출 토의했다. 상동청년학원 안에 개설된 하기(夏期)국어강습소의 졸업생과 유지들을 규합하여 1908년 국어연구학회를 조직한 후 2년 동안 이끌었다. 국어연구학회는 1911년 조선언문회(배달말글몯음)로, 강습소는 조선어강습원으로 개칭되었다가 1913년 학회의 이름이 한글모로, 1914년 조선어강습원의 이름이 한글배곧으로 다시 바뀌었다. 이 단체들의 회장이자 강사로서 많은 제자들을 키워냈다. 1909년에는 J.S.게일, 다카하시[高橋亭] 등과 더불어 한어연구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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