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와 삼국유사
- 최초 등록일
- 2010.11.14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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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까다로우신 국문학사 교수님께 한 부분도 지적받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자료들만 모아서 꼼꼼하게 준비한 자료이니 많은 도움 되실거라
생각합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제 1 부. 『삼국사기(三國史記)』
1. 김부식의 생애
2.『삼국사기(三國史記)』편찬배경
3.『삼국사기(三國史記)』서술방법
4.『삼국사기(三國史記)』내용과 체제
5. 김부식의 사관
6.『삼국사기(三國史記)』의 문헌적 성격
제 2 부. 『삼국유사(三國遺事)』
1. 일연의 생애
2.『삼국유사(三國遺事)』편찬배경
3.『삼국유사(三國遺事)』서술방법
4.『삼국유사(三國遺事)』내용과 체제
5. 일연의 사관
6.『삼국유사(三國遺事)』의 문헌적 성격
Ⅲ. 결론
부록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역사 편찬은 이전 시대 역사를 정리하는 사업으로서, 유교적 왕도 정치 구현의 문화적 기념물이다. 동시에 그것은 중앙집권 완성의 표징으로 왕실권위의 확립을 위한 산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가 무사히 후세에 전래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의 역사적 관점과 의식을 통한 검증을 통해 내려왔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양자는 그 시대의 역사 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승자의 기록은 햇빛을 받아 역사로 남고, 패자의 기록은 달빛에 쪼여 설화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 비추어 보면 삼국사기(三國史記)가 ‘태양의 기록’이라면 삼국유사(三國遺事)는 ‘달빛에 물든 신화’이다. 의미를 해석해 보면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사실을 추구고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설화, 민요, 향가 등 저잣거리에 내려오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귀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이렇게 동시(고려)에 저술되었지만 관찬과 사찬의 다른 형태로 서술되었으므로 역사 서술상의 비교에 좋은 참고사항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두 역사서를 아래에서 좀 더 자세하게 저자의 생애와 편찬배경, 서술방법, 내용과 체계, 저자의 사관, 문헌적 성격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 본론
제 1 부. 『삼국사기(三國史記)』
1. 김부식의 생애
김부식은 할아버지 대까지의 생활기반은 경주에 있었고, 부친인 김근(金覲)때부터 중앙관료로 진출하기 시작하였으나 젊은 나이로 죽었기 때문에 고위 관직에까지 오르지는 못했다. 그 후 김부식의 형제들 모두 관직에 오른 후에 가문이 크게 번성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 둘째형인 부일과 김부식 자신, 그리고 동생인 부철 3형제는 당시 관료들이 가장 명예스럽게 생각했던 한림(翰林)직에 기용되어 남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였다. 김부식은 숙종 1년에 과거에 급제한 이후, 20여 년 동안 한림원(翰林院)에 근무함으로써 자신의 학문을 크게 발전시킬 수가 있었다. 그는 선대로부터 유학자의 집안이었는데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유교 경전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유교에 대한 이념이 『삼국사기(三國史記)』의 편찬 시에 반영되었을 것임은 당연하다.
참고 자료
박진태 외,『삼국유사의 종합적 연구』, 박이정, 2002
정구복,『삼국사기의 현대적 이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백지영,「고려조 역사서의 평가를 위한 비교 연구 :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를 중심으로」, 이화여대대학원, 2003
김진영, 「삼국사기에 나타난 김부식의 역사의식 연구」, 전주대 교육대학원, 2008
이종문, 『고려전기의 문풍과 김부식의 문학』, 계명한문학연구회,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