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대응

등록일 2002.06.09 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1950년대의 일본의 교과서 검정제와 교과서 재판
2.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
1) 1982년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2) 1986년의 「신편 일본사」 왜곡
3. 2001년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한국의 대응
1)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일본 중학교
2) 정부의 [일본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 발족
3) 국회의 움직임
4) 학계의 활동
5) 시민단체의 활약
6) 북한의 동향
7) 중국의 반향
4. 일본의 반응
1) 일본 정부의 대응
2) 일본 시민단체 등의 반대
5. ‘만드는 모임’ 교과서의 실패와 일본의 상황

본문내용

1. 1950년대의 일본의 교과서 검정제와 교과서 재판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난 후 일본은 점령국 미국의 군정을 거쳤다. 이후 일본은 제도상으로 상당한 수준의 민주화를 실시하게 되었다. 천황은 상징적 존재로 남게되었고 군대를 보유할 수 없게 되었다. 학교 교육에 쓰이는 교과서의 역사기술도 한반도 강점과 만주침략, 태평양전쟁 등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술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자위대가 창설되면서 등장한 일본 재무장론은 보수우익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일부 정치인들은 재무장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지작업을 교과서에 대한 공격에서 시작했다. 이들은 교과서에 기술된 ‘침략’이라는 역사기술을 문제삼아 1955년부터 1956년 사이에 대대적인 사상공격을 가했다.
그 결과는 교과서검정의 강화로 나타났다. 1956년에 신설된 ‘교과서 조사관제도’로 문부성이 교과서 기술의 방향과 내용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부성의 교과서검정이 실시된 이후 일본의 역사교과서에서는 일본의 가해 사실 등에 관한 기술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자 이에나가 사부로 당시 동경교육대학 교수는 문부성의 교과서검정에 대하여 부당성을 제기했다. 그가 집필한 교과서가 문부성의 검정에서 불합격하자 이에나가 교수는 1956년과 1967년에 2차례에 걸쳐 검정 불합격 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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