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경복궁 답사문

등록일 2002.06.09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경복궁에 대해서 샅샅이 조사하고..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붙여놓았습니다..

열씨미 만들었구요..

이 레포트 제출하고 A+을 받았습니다...

목차

1. 경복궁(사적 제 117호)의 역사
2. 광화문에서 근정전까지 있는 건축물
(1) 외곽에 있는 문
① 광화문
② 건춘문, 영추문, 신무문
(2) 내부에 있는 문
① 흥례문
② 근정문
(3) 그외의 건축물들
① 영제교
② 동십자각
3. 왕과 왕비가 사용하던 건축물
(1) 근정전(국보 제 223호)
(2) 왕이 집무를 보는 곳
① 사정전, 만춘전, 천추전
(3) 왕과 왕비의 거처
① 강녕전
② 교태전
(4) 왕과 왕비가 휴식을 취하던 후원
① 향원정
② 아미산
4. 세자와 세자빈이 사용하던 건축물(동궁)
(1) 자선당(세자와 세자빈의 침전)
(2) 비현각
(3) 자선당과 비현각 주위의 건물
5. 경복궁의 연회장소
(1) 경회루
6. 그 외의 건물
(1) 수정전
(2) 자경전
(3) 흠경각
(4) 풍기대(보물 847호)
7. 그 외의 여러가지
(1) 명성황후 시해장소
(2) 북궐도
8. 중국와 일본의 궁궐과 비교한 경복궁
9. 중국와 일본의 궁궐과 비교한 경복궁
※ 경복궁 답사 소감

본문내용

경복궁은 조선 시대에 지어진 5개의 궁 가운데 으뜸이 되는 정궁이다. 이 궁은 1392년에 조선의 최초의 왕인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을 떠나 서울을 조선의 정도로 정한후 1395년에 중건한 정궁이다. 당시 한양(한성)으로의 천도는 태조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개경은 고려의 신하였던 구세력들의 본거지였기 때문이다. 한양은 조선왕조의 새로운 기반이었고, 경복궁은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 정도전 등의 개국 공신들이 심혈을 기울여 터를 정하고 지은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중건된 경복궁의 역사는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1553년 대화재로 불에 타고, 다시 임진왜란(1592)때 방화로 타버린 경복궁은 그후 273년 가량이나 복구되지 않고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경복궁이 이처럼 오랜 시간동안 방치되게 된 이유는 임진왜란 때의 왕인 선조 이후의 많은 왕들이 경복궁을 복구하려는 의지는 있었으나 대신들의 반대로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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