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의 분석
- 최초 등록일
- 2010.11.03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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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족주의 사관과 민주주의 사관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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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일본인들이 우리의 강토와 민족 그리고 우리의 정신을 모두 빼앗기 위해서 식민사관에 의한 한국사관을 조작하고 있을 때 민족적 자각에 뒷받침된 사학연구자들은 민족주의 사관에 의한 한국사를 연구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살던 시대적 산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 있어서 민족에 대한 자각이 뚜fut해지던 시기는 아무래도 그들의 활동무대에 등장하던 19세기 말엽으로부터의 일이 아닌가 한다. 물론 민족적인 감정은 오랜 옛날로부터 있어 온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왕이나 일부귀족 일부 귀족이 아니라 국민에 의하여 뒷받침된 민족적 자각은 독립협회의 활동을 전후한 시기로부터라고 보아야 할 것이 아닐까 한다. 청국․러시아․일본 등 열강 제국들의 침약에 대한 방황 속에서 민족적 자각은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 사관을 ‘협의적 민족주의사관’이라고 일단 규정짓자. 그러나 이 같은 사관으로 한국사를 연구한 단재와 육당의 민족주의 사학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역사적인 발전에 대한 개념이 결여되어 있다는 데 있다. 단재가 가지고 있는 역사의 시간적 인식은 민족의식의 강약과 투쟁의 승패에 있었을 뿐이었다. 그 대립과 투쟁을 지양하여 새롭고 보다 높은 것으로 발전하는데 대하여는 언급이 없었던 것이다. 육당의 경우에 있어서도 발전에 대한 개념을 찾아볼 수 없음은 마찬가지이다. 그에게 있는 것은 역시 “조선정신 발로”의 강약뿐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이 점에서 그들의 민족주의사학은 가장 치명적인 결함을 드러내 놓고 있는 셈이다. 민족의 얼을 내세운 위당의 철저한 정신사관도 단재의 역사관과 흡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민족사학의 결점을 똑같이 안고 있다고 보여 진다.
협의적 민족주의 사관이란 일본의 식민지 지매에 대항․반항과 함께 청국․러시아 등 열강제국들의 침략에 대한 반항 속에서 민족자주독립의 길을 찾자는 역사관이라고 하겠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그 뒤의 민족주의사관도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보여 진다. 해방 후 민족주의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였고 한국국제정치학회에서는 1967년 “조선민족주의” 심포지엄을 개최했고,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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