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상
- 최초 등록일
- 2010.09.28
- 최종 저작일
-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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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고전 작가 정지상의 생애와 사상 시세계에 대해서 발표했던 자료입니다.
목차
1. 정지상의 생애와 사상
2. 정지상의 시세계
3. 정지상 시의 매력
4. 김부식과의 문학적 차이
4. 마무리를 하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정지상의 생애와 사상
정지상은 서경 사람으로 본래의 이름은 之(덧말:지)元(덧말:원)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인종이 서경이 행차하였을 때 그의 어머니에게 물건을 하사함에 감사하는 뜻을 글로써 표현한 것을 통해 그의 생애의 일부를 살펴보자.
‘ 저는 어려서 어머님의 가르침을 받다가 태학에 와서 입학하였으니 사마상여가 숭선교에서 글을 쓰던 것처럼 비분강개하게 서울에서 노닐었고, 주매신이 비단옷을 입고 부귀하게 되어서 고향에 돌아갔던 일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러나 10여 년 동안이나 하는 일이 여의치 못하여 천리 밖을 떠돌아 다녔으며 전원은 황폐하여지고 친척들과도 이별하였으니, 우물을 파다가 샘물이 나오는 곳에 다다르지 못한 것처럼 거의 중도에서 공부를 그만두게 되었으나, 산을 만듦에 단지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기 때문에 지나간 공을 없애지 말아야겠다는 마음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때마침 돌아가신 예종계서 문장을 우대하셔서 현량과에 수석으로 급제하여 갑자기 용안을 우러러 뵙는 칭찬을 입어 노모가 문에 의지하여 기다리는 은혜를 위로하고, 초야의 미천한 몸이 여러 벼슬아치 뒤를 쫓아서 궁궐에 들어가 소요하게 되었사오나, 마음은 항상 강호를 그리워하여 도리어 몽상에 시달렸나이다.’ <稱(덧말:칭)帝(덧말:제)建(덧말:건)> 元(덧말:원)34
이 기록을 통해 정지상이 문벌귀족 출신이 아니었고, 편모슬하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114년 중앙관리로 개경에 올라와 벼슬을 하였다. 1127년에는 척준경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그것을 인종이 받아들여 척준경을 유배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로부터 정계에 두각을 나타내고, 인종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칭제건원(西京(덧말:서경)遷都(덧말:천도)私(덧말:사)命(덧말:명))을 하자는 논의와 서경천도()를 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일어났을 때 그는 묘청과 함께 서경천도를 주장했는데, 중앙문벌귀족의 중심세력이었던 김부식이 이를 강력히 반대해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서로 대립하였다. 1135년 묘청은 인종의 서경천도의 뜻이 미약해지자 난을 일으켰다. 관군 총사령관으로 반란진압에 나선 김부식은 먼저 국론을 통해 정지상이 ・김 안・ 백수한 등이 반역에 가담했으니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해 개경에 있었던 정지산응ㄹ 즉시 체포하였다. 체포되어온 그는 김부식의 사명에 의해 궁문 밖에서 죽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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