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생애와 사상
- 최초 등록일
- 2010.09.26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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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원효의 생애와 사상
목차
1. 생애
2. 일심(一心)사상
3. 화쟁(和諍)사상
4. 수행론과의 관계
본문내용
1. 생애
법명은 원효(元曉), 법호는 화정(和靜), 속성은 설씨(薛氏), 초명은 서당(誓幢)이며, 신라 제 26대 진평왕 39년에 압량군 불지촌에서 태어났다. 15세 이전에 세속의 학문을 통달하였고 당시 유행하던 불법을 배우고자 15세의 나이에 출가하여 삼장을 모두 공부하였으나 원래 총명하여 불법의 오의를 자득하였고, 특정한 스승에게 배우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약간의 기록에 의하면 낭지. 보덕에게서 배웠다는 사실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현장법사가 서역 천축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태종의 보호아래 역경사업을 벌이고 유식. 법상학을 강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진덕여왕 4년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의 길을 떠났으나 가던 도중 고구려 순찰병에게 잡혀 고생을 하다 간신히 돌아왔다. 이에 원효는 항상 마음가운데 당나라로 떠나기를 고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문무왕 원년 45세에 다시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향했으나, 유학길을 떠나던 도중 ‘마음이 생겨나면 모든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멸하면 모든 법이 멸한다.’는 유식의 도리를 깨닫고 당나라유학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왔다.
원효는 이후 무애행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 무애행의 대표적 내용으로는 요석공주와 결혼하여 설총을 낳고 나서 옷을 속복으로 갈아입고서 소성거사라 칭하면서 천촌만락을 돌아다니면서 대중들에게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게 하는 대중교화운동을 벌였다.
그러던 중 난해한 책으로 알려진 <금강삼매경>에 대한 소를 짓고, 그 강의를 위해서 다시 중앙의 불교계에 진출하여 자신의 불교사상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그리고 다시 혈사로 돌아와 수행하던 중 686년 입적하였다. 이상과 같이 정리된 원효의 행장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통설이다.
- 무덤 속 대오 설화
「원효와 의상이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중도에서 심한 폭풍우를 만났다. 이에 토굴 속에 몸을 숨겨 비를 피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