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시대별 발전
- 최초 등록일
- 2010.09.16
- 최종 저작일
-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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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대별 한국영화의 발전에 대해서 설명했고, 또한 그시대의 여성상에 대해서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목차
『1950년대의 영화』
『1950년대 영화 ‘자유부인’(1956)을 통해 본 여성의 이미지』
『1960년대의 영화』
『1960년대 영화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를 통해본 여성의 이미지』
『1970년대의 영화』
『1970년대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통해 본 여성의 이미지』
『결 론』
본문내용
1950년대의 영화』
1950년 초기에는 한국 전쟁이 발발되면서 한국영화계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습니다. 영화인의 납북과 월북, 기자재의 파괴, 기존 필름의 유실 등이 그것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물자 부족의 현실은 민간인 차원에서 영화를 제작하기가 벅찼고, 그나마 활동했던 영화인마저도 군 영화 제작 활동에 투입되었습니다. 또한 작품경향은 전후방에 걸친 시국적인 계몽영화와 전시 사회를 배경으로 범죄를 다룬 서스펜스물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전쟁 기간인 1950-3년까지 거의 모든 영화인들이 정부기관과 군대에 소속되어 영화제작을 계속 하였습니다. 전투 현장이나 후방의 상황을 찍은 보도 영화 등의 기록 영화가 주를 이루었으며 소수의 극영화도 제작되었는데, 대개 적의 만행을 고발하고 승전의 의지를 고취시키는 반공 계몽 영화의 형태를 뗬습니다. 그 밖에 기록 영화의 활성화는 동란기 한국영화의 특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전쟁과는 별도로 제작된 한국 극영화로는 신경균의 <애인애사(1950)><3천만의 꽃다발(1951)>, 이경손의 <흥부와 놀부(1950)>, 윤봉춘의 <성불사(1952)>, 전창근의 <낙동강(1952)>, 민경식의 <태양의 거리(1952)>, 신상옥의 <악야(1952)>, 이만홍의 <애정산맥>, 정창화의 <최후의 유혹(1953)>, 손전의 <내가 넘는 삼팔선(1951)><공포의 밤(1952)> 등 전시 중 년 5~6편 제작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50년대 후반은 20년대 후반처럼 한국영화의 제2 황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54년 한국 영화계에 대한 면세조치는 영화 제작에 있어서 양적인 증가를 유도했고 영화 산업의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1955년에 불과 15편 제작으로 시작된 전후 영화는 59년에 이르러 109편 제작을 달성하는 영화 산업의 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