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역사] 명치초기 정한론에 관한 당쟁의 성격

등록일 2002.05.31 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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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 리 말
Ⅱ. 일본적 정한론쟁
Ⅲ. 정한론쟁의 성격
Ⅳ. 맺 음 말

본문내용

明治維新을 주도한 세력이 정권 유지와 확대를 위해 채택한 구호는 富國强兵이었다. 近代化를 이루기 위해 富國强兵의 기치를 내걸지 않은 나라는 없지만 日本은 특히 富國强兵의 노선에 국민을 총동원시키기 위해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강제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天皇을 중심으로한 중앙집권적인 성격을 지닌 정부를 성립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메이지 新政府가 수립되었어도 各 蕃은 여전히 존속하여 藩王이 그것을 지배하였다. 그들은 蕃의 세력을 배경으로 하여 중앙 정치에도 강한 발언권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1869년 2월에 죠오슈우 출신의 기도 다카요시(木互孝允), 사쯔마(薩摩)출신의 오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토사(土座)출신의 이타가키 다이스케(板桓退助)의 획책으로 薩摩, 죠우슈우, 土座, 히젠(肥前)의 번왕들이 板(領土), 籍(領民)을 政府에 바치겠다고 장문을 제출함으로써 版籍奉還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러나 기존의 권력을 상실한데에 대해 반기를 드는 등의 문제들이 발생하자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를 칙사로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와 기도 다카요시(木互孝允)를 參議로 참여시키는 한편 內閣 또한 갱신하여 준비를 갖추고 나서 蕃을 發하고 縣을 두어 中央政府가 직접 통치하는 發蕃置縣을 실시하였다.

참고 자료

●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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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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