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경제발전론수업때 조별발표한 보고서자료입니다
목차
Ⅰ.해방에서 6.25동란까지의 우리경제(1945~1953)
Ⅱ.6.25동란이후 1950년대 우리경제(1954~1961)
Ⅲ.1960년대-압축성장의 시발과 개발전략의 정착(1962~1971)
Ⅳ.1970년대-구조적 변화와 고도성장(1972~1981)
Ⅴ.제5공화국의 우리경제(1981~1986)
Ⅵ.제6공화국의 우리 경제(1987~1997)
Ⅶ.IMF 극복기(1998~2002)
Ⅷ.우리조의 교훈
본문내용
Ⅰ.해방에서 6.25동란까지의 우리경제(1945~1953)
1) 경제상황
1. 귀속재산 존재.
- 한국인의 70%가 농업에 종사하고, 귀속재산의 남한 총 자산의 70 ~80 %가 되었다.
- 귀속재산은 공업화의 출발점이 될 식민지경제의 유산이라 볼 수 있다.
2. 농지소유∙분배관계의 불평등.
- 1945년 말 남한 총 경지 230만 정보 중 65%가 소작지이었으며, 농가호수 206만호 중 자소작농, 소작농, 고(용)농이 86%에 달하였다.
- 지주적 토지소유의 전개와 이에 기초한 가혹한 소작료 수취 및 이로 인한 농민경영의 불안정성이 존재하였다.
2) 정부정책 및 기본방향
1. 자본축적
- 농지개혁은 지주∙소작관계의 폐지를 통하여 농업생산력을 증대시켜 산업의 기반이 되게 하고, 토지자본을 귀속기업체와 결합시킴으로써 산업자본에 전환하여 산업구조의 변화 내지는 공업화의 기반을 조성하려는 의도였었다.
2. 실시된 정책
- 1950년 3월 10일 ‘농지개혁법 개정법률안’이 공포됨으로써 남한의 농지개혁법이 시행되었다.
- 귀속재산의 불하
3. 정책내용
- 정부는 지가보상과 상환의 직결을 방지하고 지주에게는 지가증권을, 농민에게는 현물납부를 규정하였다.
- 지주는 지가증권을 담보로 기업자금융자나 지가증권에 의한 귀속재산의 매수를 보장받았다.
3) 경제적성과 또는 평가
1. 귀속재산의 불하자체도 정치적 이권이 개입되면서 비민주적 불하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지주에게는 참여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고, 주식참여의 기회도 갖지 못하였다.
2. 계속적인 인플레는 지가 증권을 투매하게 하여 액면가의 절반이하로 거래되었다.
- 지주의 84% 이상을 차지하던 50석 미만의 영세지주는 몰락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농민의 상환의 과부담에 토지수득세의 가중한 압박과 제반 잡부금등으로 재소작관계로 편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농지개혁을 통해 지주는 몰락하고 영농규모는 영세화되었으며 빈곤의 나락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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