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젊은이들의 사회진출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조직에 묶여 살아가는 형태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는데요, 이런 현상이 앞으로 일본 사회에
- 최초 등록일
- 2010.09.11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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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희대 사이버 / 일본문화와 생활세계 Report 입니다.
단순한 자료 짜집기가 아닌 스스로 독창적인 자료를 많이 수집하고
본인의 의견을 많이 덧댄 체계적인 report입니당!
A+ 받았습니다 수고하세요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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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사키 준이치로(가명·27). 그는 심야 도로 공사현장에서 교통 정리 아르바이트로 생활한다. 작업은 오후 8시에 시작해 다음날 오전 6시에 끝난다. 일당은 9000엔. 3년 전 도쿄 명문대학 인문학계 대학원을 마친 석사 출신으로, 현대 일본문학을 계속 연구하고 싶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학원강사 자리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일반 회사도 면접에서 연속 고배를 마셨다. 받아준 곳은 편의점과 경비회사뿐이었다. 물론 아르바이트다. 그는 “지금이야 부모에게 얹혀 살고 있지만, 앞날을 생각하면 잠이 오질 않는다. 이러다 평생 아르바이트 인생으로 끝나지 않을지 끔찍하다”고 말했다.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에 사는 모리 시게루(24)는 휴 대전화로 하루하루 일거리를 소개받아 생활을 영위한 다. 최근에는 대형 인재파견 회사에서 건물 해체현장 업무를 소개받았다. 마스크를 준비하라는 지시가 있었 다. 자비 부담이다. 또래의 파견 아르바이터 4명과 작 업했다. 교통비 1000엔을 포함한 일당은 8000엔. 마 스크 값과 세금, 파견회사 몫을 빼자 손에는 7000엔 이 쥐어졌다. 3년 전 대학 졸업 때만 해도 희망을 가 졌지만 이젠 포기했다. 미래를 물었다. “3년 뒤도 모 르겠는데, 30년 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대답했 다.
‘프리+아르바이터’의 조어인 프리터는 1980년대 후반에 등장했다. 당시 경제는 거품의 절정기였다. 24시간 편의점이 급증하고, 건설업계는 인력 부족으로 허덕였다. 그때 프리터는 일부러 정규직에 취업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의 꿈을 좇는 이들이었다.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한다는 ‘자유’의 의미였다. 상황은 급변했다. 90년대초 거품이 꺼지고 경제는 장기불황에 돌입했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취업난이 가속화하면서 생계형 프리터가 급속히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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