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 박은식의 역사인식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0.09.09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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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 리포트는 백암 박은식의 역사인식과 생애를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목차
들어가는 말
1. 생애
2. 역사인식과 역사사상
나오는 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 들어가는 말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끝임 없는 대화라 설정한 E. H 카의 생각처럼 현재의 역사가의 생각과 가치관은 과거를 서술하는 자세의 차이가 생길 것이며 이를 통해 미래의 모습을 구성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제감정기라는 특수한 시기가 존재하며 그 당시의 역사가들은 현재의 삶의 모습을 과거 역사에 투영했을 것이며 이를 통해 미래의 어떤 모습을 기원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기의 민족주의 사학자인 박은식의 생애와 역사사상을 통해 그가 살았던 현실을 파악하고 그가 역사저술을 통해 얻고자 한 것을 무엇인지 알아보자.
1. 생애
박은식(1859~1925)은 황해도 황주부 남면의 바닷가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겸곡, 백암, 태백광노, 무치생이라는 호를 갖고 있었으며 본관은 밀양인데 그의 직계조상 중에 오랫동안 벼슬아치가 없었고 그의 조부 박종록은 농사를 지어 부농으로 성장하였다. 그의 부친인 박용호는 서당의 훈장을 하였다. 그의 생애는 3개의시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제 1기는 1898~1898(40세)까지의 주자학 수학기, 제 2기를 1898~1910(52세)까지의 언론활동과 민중계몽기, 제 3기는 1910~1952(67세)까지의 망명, 독립운동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박은식의 유년, 소년기에는 안동김씨의 외세도 말기와 대원군의 쇄국정치 시대였고, 그가 18살이 되던 1876년에 강화도조약이 맺어졌다. 그의 청년기는 개화시기로써 신문명이 수입되었고 그와 동시의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이 뒤따르는 혼란과 시련의 시기였다.
그러나 박은식은 이러한 전환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청년기에는 주자학 연마에 심혈을 기우렸다. 10세 이후 주자학 교육을 받기 시작한 그는 22세에 경기도 광주로 가서 정약용의 제가인 신기영과 정관섭을 만나 다산학을 접합으로써 학문적 성숙을 이루었고 박은식에게 실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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