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은 과연 폭군이었는가
- 최초 등록일
- 2010.08.25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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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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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연산군 그는 누구인가?
2.1 연산군 이전의 정치상황
2.2 연산군이 폭군으로 행동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
2.3 나쁜 인식들의 원인 - 갑자사화
2.4 연산군의 삶의 안식처 - 가족
2.5 연산군은 과연 나쁜 일만 했을까?
2.6 연산군의 죽음에서 보인 연산군의 다른 모습
3.1 연산군을 폭군으로만 보아야 할까?
3.2 연산군은 폭군이 아닌 왕이었다
본문내용
1. 연산군 그는 누구인가 ??
사적 제362호 연산군의 묘
연산군 (燕山君,)
(1476년 - 1506년, 재위
1494년 - 1506년)
조선의 제10대 임금.
휘는 융(隆).
성종의 장남으로 폐비 윤씨 소생이다.
(중 략)
1. 연산군은 어릴 때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났다.
실화 내용1 -
궐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뒤 성종이 그에게 물었다. “오늘 거리에 나가서 놀 때 무슨 기이한 일이 있더냐?”“구경할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송아지 한 마리가 어미 소를 따라가는데, 어미소가 소리를 하면 송아지도 문득 소리를 내서 응하여 어미와 새끼가 함께 살아있으니 이것이 가장 부러운 일이었습니다.” 성종은 세자의 말을 듣고 슬피 여겼다. 그러나 당시 연산군은 정현왕후를 친모로 알 뿐 자신이 폐비 윤씨의 소생임을 모르고 있었다.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라 할 수 있는 8세에서 12세까지의 아동기에서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행로를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을 정도로 대단히 중요하다. 물론 여러가지 요인이 다양하게 작용한다는 점도 부인하기는 힘들지만,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는 역시 부모이기 때문이다. 과정과 연유야 어쨌든 폐비 윤씨를 죽음으로 내 몬 성종과 또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로 모정을 주지 못하는 정현와후는 연산군에세 그 따뜻한 사랑은 심어주지 못했다.
1. 연산군은 어릴 때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났다.
실화 내용2 -
일찍이 성종이 사향 사슴 한 마리를 길렀는데 길이 잘 들어서 항상 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느날 폐주가 옆에서 성종을 모시고 있었는데, 그 사슴이 와서 폐주를 젖게 하였다. 폐주가 발로 그 사슴을 차니 성종이 불쾌히 여기면서 “짐승이 사람을 따르는데 어찌 그리 잔인스러우냐?”하였다. 뒤에 성종이 세상을 떠나고 폐주가 왕위에 오르자 그 날 손수 그 사슴을 쏘아 죽였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볼 때 세자 시절의 연산군은 주위에 대해 애정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혹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보상심리로 깊은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연산군이 이러한 심리적 불안과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 데에는 역시 성종 및 계비 정현왕후, 그리고 조모인 소혜왕후가 보여주는 애정의 결핍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원인에 대해 스스로 고민할 수 없었던 그였지만, 즉위 후 그가 보여준 행로는 마음속에 내재되었던 갈등이 폭발하여 나타난 것이라 추측케 한다.
(이하생략)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