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국운동
- 최초 등록일
- 2010.08.21
- 최종 저작일
- 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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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태평천국운동
양무운동 - 淸의 혼란과 멸망
본문내용
태평천국운동 [太平天國運動, Taiping Rebellion]
淸代 말기 홍수전(洪秀全)이 창시한 배상제회(拜上帝會)라는 그리스도교 비밀 결사를 토대로 청조 타도와 새왕조 건설을 목적으로 일어난 농민 운동(1851~64).
개 요
근대 사회로의 지향성을 띠고 있어, 단순한 농민 반란이라기 보다는 혁명성을 지닌 농민 운동으로 평가된다.
배 경
일반적인 배경으로는 왕조 말기적인 현상, 즉 중앙과 지방의 행정 이완, 관료와 군대의 부패, 지주제 등 경제적 모순의 심화, 자연 재해의 빈발 등과 이로 말미암은 보편적인 사회적 무질서 현상을 들 수 있다.
특히 청 말기에는 인구의 급격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경작 면적이 거의 늘어나지 않았고 아편 유입의 격증에 따른 은의 해외 유출로 은가(銀價)가 등귀함으로써, 농민의 가계가 더욱 악화되어 향촌 사회 내부의 불안과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태평천국운동의 진원지인 광시성[廣西省]은 이런 일반적 현상을 내포하고 있었다.
더욱이 지리적 특성 때문에 종족적·사회적·경제적으로 더욱 복잡했고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의 충격 여파가 크게 미치고 있었다. 산악 지역의 광산 노동자와 숯장이 등은 독자적인 무력 집단을 형성했고, 광저우[廣州] 삼각지의 해적들은 내륙 지방의 비밀 결사 천지회(天地會)와 연결되어 있어 치안 유지상 문제점이 많은 지역이었다.
아편전쟁의 패배 이후 상하이[上海]가 개항되자, 전통적으로 대외 무역의 독점을 누리던 광저우와 연결된 교역로가 갑자기 불황에 빠지면서 실업자가 된 운송업자와 전쟁 후 해산된 지방군으로 인해 사회 불안의 요소가 배가되었다.
게다가 1840년대에 영국 해군에게 쫓겨 광둥[廣東]과 광시의 내륙으로 들어온 해적들은 천지회의 지도하에 광시 성 내의 수로에서 노략질을 함으로써 사회 불안을 가중시켰다.
광시 성의 불안한 상황은 청조를 타도하고 명조(明朝)를 회복한다는 목표를 가진 정치적 비밀 결사 천지회의 반란으로 더욱 심화되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독특한 방언과 관습을 보유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광둥 성으로부터 유입되어온 커자[客家]와 먼저 이주해온 한족(漢族)의 자손인 본지인 사이에 1840년대 중반 이후 집단적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커자들은 대부분 소작인으로 부업이나 전업으로 숯장이·탄광 노동·고용 노동의 일을 하고 있었다. 향촌 공동체에 기반을 둔 본지인들은 신사(紳士)를 중심으로 단련을 조직하여 무장하고 있었지만, 커자는 한족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척박한 땅에서 분산되어 살고 있었으므로 응집력도 없었다. 태평천국운동은 바로 이 커자를 배상제회라는 종교 결사로 조직하여 출발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