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미술사(북위)] 북위의 불교조각에 관하여(중국미술사)
- 최초 등록일
- 2002.05.26
- 최종 저작일
- 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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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북위의 불교 조각]
1. 첫 번째 단계
2. 불교조각 : 두 번째 단계
3. 불교 조각: 세 번째 단계
○북향당산석굴의 보살상
○표현의 특징
○성도 만불사지 출토 군상
○공양자상
○표현상의 특징과 그 원류
1.여래상
1. 만불사지 출토 석가입상
(1)신체표현의 특징
본문내용
386년 탁발족은 북중국에 북위를 세우고 대동에 도읍을 정하였다. 북위 통치자들은 인도의 쿠샨 왕조같이 열렬히 불교를 옹호 하였다. 그것은 이민족이었던 그들이 정복지의 전통적인 사회, 종교적 체제 속으로 동화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460년후 직후 승단을 관리하는 사(沙)문(門)통(統)담(曇)요(曜)의 주창하에, 북위 통치자들은 운강에 있는 절벽을 깎아서 일련의 석굴사원과 거대한 상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불교뿐만 아니라 황실 자체의 영광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494년 수도를 남쪽의 낙양으로 옮기기 전까지 운강에는 20개의 커다란 굴과 작은 굴들이 개(開)착(鑿)되었으며, 수대에 다시 계속되었고, 후에 대동이 요대의 서경이 되었던 916년부터 1125년 사이에도 석굴이 개착되었다. 제 16굴에서 20굴까지 가장 오래된 석굴(담요 5굴)은 황제 자신과 그 이전의 네 명의 북위 황제들에게 봉헌된 것인데, 이는 아마도 444년 도교 신자였던 조부가 행한 가혹한 폐불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서 봉헌되어진 듯하다. 이 다섯 개의 굴에는 자연 암벽을 깎아서 만든 거대한 불좌상과 불입상이 있는데, 20굴의 불좌상의 경우 15미터 높이의 거대한 상으로 선정의 자세로 앉아 있으며, 원래는 여러 층으로 된 목조 가구(架構)로 보호되어 있었다. 불좌상의 어깨와 가슴은 양감이 있고 뱨례가 잘 맞으며, 얼굴의 윤곽이 뚜렷한데 간다라 조각에서 흔히 발견되는 가면과 같이 생경한 느낌도 약간 나타난다. 반면 옷주름은 평평하고 가죽 혁대 같은 띠모양으로 표현되었는데 팔이나 어깨의 윤곽을 돌아서 지나갈때는 뾰족한 끝으로 사라진다. 이런 묘한 표현 습관은 어쩌면 시크만이 지적했듯이, 조각가가 범본으로 삼았던 서역이나 인도에서 전래한 필선으로 스케치된 도상을 따라 만들면서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기인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유명한 예배 존상들의 양식을 가능한 한 똑같이 모사한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