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 최초 등록일
- 2002.05.26
- 최종 저작일
- 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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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요
베를린의 지리학적 위치
문화적 사회적 중요성
본문내용
베를린은 전쟁에 의한 피해를 여러 차례 받았다. 7년전쟁 때에는 1757년 오스트리아군, 1760년 러시아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나폴레옹전쟁 때에는 1806∼1810년에 프랑스군에 의해 점령되어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해방전쟁 뒤에는 짧은 기간에 부흥을 이룩하였다.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관세동맹이 성립된 사실과 1848년에 베를린·포츠담 사이에 철도가 개설된 것을 효시로 단기간에 철도망의 중심이 된 사실이 부흥에 기여하였다. 인구도 급속히 증가하여, 해방전쟁 당시 약 20만인 것이 1861년에는 약 55만이 되어, 반세기 사이에 3배가 되었다. 인구증가에 따라 근대적인 도시 개조가 불가피해져서, 17세기 말에 구축된 성벽이 1861년에 철거되고, 또 교외의 거리가 시역에 흡수되었다. 1871년에 이룩된 독일제국(獨逸帝國)의 창건은 베를린이 한층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베를린은 제국의 수도로서 전독일의 정치적 중심지가 되고, 보르지크·지멘스 등 대기업도 베를린을 본거지로 하였기 때문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따라서 도시행정 구역도 재편성이 이루어져, 1920년 샤를로텐부르크·노이쾰른·슈판다우·빌머스도르프 등 주변 도시들과의 대합동이 실현되어 대(大)베를린이 성립됨으로써, 인구 400만의 세계적인 대도시가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