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
- 최초 등록일
- 2010.08.09
- 최종 저작일
- 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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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연명(365~427) 자는 원량, 아마도 남조를 송에 포함시킨 이후에 이름을 잠, 자를 연명이라고 바꾸었다. 심양 시상(현재의 강서성 구강시 서남)사람이다. 죽은 후에는 친구가 “정절”이라 시호를 붙였으며, 대대로 “정절 선생”이라고 불리운다.
그의 증조부인 도간은 동진의 개국 공신이며, 대사마(병조판서), 팔주의 군사 업무를 총괄하는 도독, 형강이주자사의 관직에 올랐으며, 장사 군공으로 봉해졌다. 조부인 도무는 무창태수를 지냈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동진의 명사 맹가의 딸이다. 도연명이 소년시절에 집안형편이 쇠락해져 생활이 빈곤 하였다.
목차
도연명
도화원기
본문내용
도연명(365~427) 자는 원량, 아마도 남조를 송에 포함시킨 이후에 이름을 잠, 자를 연명이라고 바꾸었다. 심양 시상(현재의 강서성 구강시 서남)사람이다. 죽은 후에는 친구가 “정절”이라 시호를 붙였으며, 대대로 “정절 선생”이라고 불리운다.
중국명문감상 《桃花源記》
그의 증조부인 도간은 동진의 개국 공신이며, 대사마(병조판서), 팔주의 군사 업무를 총괄하는 도독, 형강이주자사의 관직에 올랐으며, 장사 군공으로 봉해졌다. 조부인 도무는 무창태수를 지냈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동진의 명사 맹가의 딸이다. 도연명이 소년시절에 집안형편이 쇠락해져 생활이 빈곤 하였다.
그는 청년 시절에 많은 책들을 두루 읽었으며, 공을 세우고 세상을 구하려는 뜻을 품고 있었다. 또한 일찍부터 잇따라 강주제주, 진군참군, 건위장군, 평택현령 등 지방의 하급관리를 맡았다. 그는 관리사회의 속박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41세 그해에 바로 관리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농촌에서 몸소 농사를 지으며 은거하는 생활을 보냈다.
도연명은 중국의 저명한 전원시인이며,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한 후에 시골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 체험한 바가 있었다. 훌륭한 전원풍경의 적지 않은 묘사와, 자신의 평안하고 고요하며 한적한 심정을 토로한 작품을 써내었다. 그는 당시 정치의 부패와 통치자의 잔인하고 포악함에 대하여 실로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원의 즐거움을 서술한 시문에서, 종종 한가롭고 무의미하며 활달한 가운데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무의식적 중에 드러내었다. 루쉰선생이 말하길 “도집에는 <<술주일편>>이 있는데, 이는 당시의 정치를 말한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