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음식의 역사와 특징
- 최초 등록일
- 2010.08.06
- 최종 저작일
- 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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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궁중음식의 역사와 특징
목차
1.궁중음식의 역사
2.일상식
3.연회식
4.시식 및 절식
5.특징
6.내 생각
본문내용
궁중음식 [宮中飮食]
한국은 예로부터 의례를 중히 여겨, 이에 따르는 특별한 음식도 많이 전래 된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왕가의 음식과 제도가 우리 민족의 음식을 대표할 만큼 다채로웠다. 즉 조정이나 왕가 및 개인적인 의례에 차리는 음식이 구분되었다. 예를 들어 왕족은 왕권사회에서는 특권계급으로 군림하였으므로 식생활 양식 및 제도가 가장 발달되고 엄격하였으나 궁중에서는 음식을 한 곳에서 만들지 않는다. 중전·대비전·세자빈의 전각 등 각 전각마다 주방상궁이 딸려서 각각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각 전각의 음식을 만드는 부서로는 생과방(生果房)과 소주방(燒廚房)이 있었다. 생과방은 평상시의 수라 이외에 제호탕·잣죽·깨죽·낙죽 등과 각종 전과·식혜·다식·떡 등 음료와 과자를 만드는 부서로 잔치 음식의 다과류도 이곳에서 만들었다.
소주방은 내소주방과 외소주방으로 나누어진다. 내소주방은 조석수라를 관장하는 곳으로 주식에 따른 각종 찬품을 맡았다. 외소주방은 잔치음식을 만드는 곳으로서, 궁궐의 다례나 대소 잔치는 물론 웃사람의 생일에도 잔칫상을 차렸다. 이밖에 잔치를 위하여 임시로 설치하는 숙설소(熟設所)가 있었다.
궁중음식은 조선시대인 1970년 12월 30일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을 세운 태조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길 때 함께 옮겨온 개성의 고려시대의 전통음식으로, 한국의 전통음식을 대표하는 요리라고 할 수 있다. 궁중의 일상식은 이른 아침의 초조반상(初朝飯床)과 아침 수라상, 점심의 낮것상, 저녁 수라상의 네 차례로 나뉜다. 궁중음식은 궁중 나인들에 의하여 대를 이어 전승되어 왔는데, 조선이 멸망한 뒤에는 민간으로 전수되어 일반인들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뒤 조선시대의 마지막 주방상궁인 한희순(韓熙順)이 첫 기능보유자가 되었고, 그의 제자인 황혜성(黃慧性)이 뒤를 이었으며, 황혜성이 사망한 뒤 그의 큰딸 한복려(韓福麗)와 제자 정길자(鄭吉子)가 각각 궁중요리와 궁중병과 부문의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궁중음식에 대해서는 《진연의궤(進宴儀軌)》와 그 밖의 진연기록 및 각종 문헌에 의하여 그 내용을 알 수가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