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기행문
- 최초 등록일
- 2010.07.28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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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창경궁을 답사하고 쓴 기행문입니다. 사진 첨부되어 있습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창경궁(昌慶宮)
3. 창경궁의 건물
4. 분노
5. 기쁨
6. 글을 놓으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시험이 끝나고 12월 17일 홀가분한 기분으로 창경궁으로 갔다. 예전에 덕수궁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창경궁도 덕수궁 정도 크기겠지 생각하고 갔는데 크기가 덕수궁의 2배? 아니 3배 4배는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돌아다니면 이도저도 구경을 못하겠다 싶어서 창경궁에서 정해놓은 코스를 따르기로 했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부터 명정전으로 해서 북쪽으로 식물원까지 이어놓은 코스였다. 순서대로 돌아다니면서 세워져 있는 안내문을 읽었는데 홍화문을 지나서 제일 처음 건물인 명정문부터 임진왜란 때 불타서 없어졌었다고 한다. 그리고 순서대로 가면서 보니 총 네 번의 불이 났었다. 임진왜란, 이괄의 난, 병자호란, 1830년……. 수난을 많이 겪은 궁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수난을 겪은 궁. 창경궁에 대해서 알아보자.
2. 창경궁(昌慶宮)
창경궁은 많은 사람들이 놀러가는 대학로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에서 대명거리를 따라 올라와서 큰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공식적인 위치는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2-1번지 창경궁이다. 모두 남향인 다른 궁과는 다르게 창경궁은 동향을 하고 있는데, 풍수 지리적으로 이 자리는 동향이 좋다고 한다.
창경궁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이었다. 세종이 즉위하고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궁이 수강궁이었다. 이 수강궁에서 태종은 정전에서 집무를 했다고 한다. 태종과 대비가 승하하고 예종이 이곳에서 즉위를 하였으나 크게 사용되는 곳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다 성종 14년(1483)년에 이름이 창경궁으로 바뀌고 명정전, 문정전 등 건물을 크게 지으면서 궁궐로서의 격식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런 창경궁이 수난을 당하기 시작한 것은 1592년 임진왜란 때이다. 이때는 창경궁뿐만이 아니라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가 모두 소실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창경궁은 소실되고 나서 제대로 된 중건 공사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광해군 8년(1616년)에 중건 공사가 완료되었다. 그 후 이괄의 난이 일어나 또 수많은 건물이 소실되었다. 병자호란에도 화재가 발생해 건물이 많이 소실되었으며 순조 30년 (1830년)에도 화재가 발생했다고 한다. 일제는 순종 3년(1909년) 창경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개설하고 일반인에게 관람하게 하였다. 1911년에는 일제가 궁 안에 박물관을 설치하면서 동․식물원을 포함하여 창경원이라 이름을 고쳐 그 격을 떨어뜨렸다. 이런 수난을 견뎌내고 최근까지 조경공사를 시행하여 조선 궁궐의 옛 모습을 되살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