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청자에 대한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10.07.27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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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표적인 고려 청자 4점과 이와 관련된 은입사 청동 1점에 대한
감상문이다.
목차
Ⅰ. 서론
Ⅱ. 청자 개관
Ⅲ. 유물 소개
Ⅳ. 결론
본문내용
Ⅱ. 청자 개관
중국에서 청자는 漢代에 초기적 청자가 나타나고, 唐나라와 五代를 거치면서 질적으로 세련된 청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이 후 宋代에 이르러 청자는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요주요, 균요, 여요에서는 우아하고 고결한 분위기의 북방청자를 생산하였고, 월주요의 전통을 이은 용천요는 남방청자의 대표였다. 宋代에 경덕진요는 影靑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청백자를 만들어내면서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청자는 993년(이화여자대학교 소장 靑磁淳化四年銘壺)에 초보적인 청자로 시작하여 11세기 들어와 청자다운 청자가 만들어졌다는 일본인학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최근에는 가마터와 햇무리굽청자를 연구하여 9세기 후반, 10세기 초반에는 이미 청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려청자는 초기의 숙련기를 거쳐 11세기 중엽 요, 송, 고려사이의 정치적 안정과 송과의 문화교류를 바탕으로 세련되고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은 색과 문양, 그리고 유려한 기형에 있다. 12세기 전반기 50여 년 동안 고려청자는 순청자의 최절정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고려 특유의 翡色이 완성되는 것이다. 인종 원년(1123년)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서긍은 그의 저서 『선화봉사 고려도경』에서 ‘그릇 색이 푸른 것을 고려 사람들은 비색이라 부른다. 요사이 고려 도자기의 제작이 절묘해졌고 그 색이 더욱 좋아졌다.’ 라고 기록하였다. 당시 고려 사람들은 청자색의 중국식 호칭인 秘色이란 용어와는 다르게 翡色이라는 고유 명칭을 쓸 정도로 자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당시의 송나라 학자 太平老人은 그의 저서 『袖中錦』에서 고려청자의 翡色을 당대 천하제일이라고 평한 것에서도 고려청자가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Ⅲ. 유물 소개
1. 청자 참외 모양 병
◎ 지정번호 : 국보 제 94호
◎ 연대 : 1146년
◎ 크기 : 높이 22.8cm, 몸통지름 9.6cm, 입지름 8.8cm, 밑지름 8.8cm
◎ 종류 : 병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