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국사-<호적대장 연구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한 리포트
목차
Ⅰ. 머리말
Ⅱ. 호적대장의 연구현황
1. 일제시대 시카타 히로시(四方博)의 연구
2. 1960년대 김용섭의 연구
3. 1970년대의 연구
4. 1980년대 이후의 연구
Ⅲ. 호적대장 연구의 과제
1. 호적대장의 성격 규명 필요
2.《慶尙道丹城縣戶籍大帳》 관련 과제 설정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조선시대 사회사 연구에 있어 호적대장은 조선후기 사회변동 양상 특히 신분 구조 변동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자료로 주목받아 왔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민을 대상으로 각종 역을 부과하기 위해 3년에 한 차례씩 호적대장을 개수하도록『경국대전』에 명시되어 있다. 호적을 개수하기 위해 민들은 自家의 호구 상황을 호구단자에 적어 보고하면 관에서는 그 착오 여부를 확인 정정하고 이를 토대로 호적대장을 작성하게 된다. 또한 법전에는 호적대장에서 호구를 누락할 경우 그 고을 수령과 담당 色吏에 대해서는 매우 엄한 처벌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호적대장의 기록은 당시 호구 등에 대한 매우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호적대장에는 각 主戶 또는 솔거인의 직역, 성명, 나이, 본관, 四祖의 직역과 성명, 가족의 직역, 성명과 나이, 그리고 노비에 대한 사항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당시의 가족 구성, 인구, 신분, 혼인 등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여러 방면 연구에 활용 될 수 있었다. 일제시대 시카타 히로시의 연구로 시작된 호적대장의 연구 현황과 과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호적대장의 연구 현황
1. 일제시대 시카타 히로시(四方博)의 연구
호적대장의 분석을 토대로 조선후기 사회의 변화상을 총체적으로 해명하고자 하는 연구는 매우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호적을 활용한 초기의 대표적인 연구자는 일제시대 시카타 히로시(四方博)와 해방 이후의 김용섭을 들 수 있다. 두 사람의 연구는 연구자가 역사에 대해 어떤 시각과 전망을 갖느냐에 따라 동일한 자료의 분석 결과가 전혀 다른 해석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시카타는 조선사회의 정체를 증명하는 사료로서 호적대장을 활용하였으며, 반면 김용섭은 호적대장 분석결과를 토대로 신분제의 해체 양상과 한국 근대화의 전망을 얻어내고 있다. 흔히 조선후기 사회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을 ‘정체론’과 ‘변동론’으로 이야기할 때, 그 상반된 두 시각을 대표하는 초기 연구자가 바로 이들이다.
참고 자료
노영구,「기획 : 단성호적의 사료적 성격 ; 조선후기 호적대장 연구현황과 전산화의 일례」,『대동문화연구 39』,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1, p.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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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기획 : 단성호적의 사료적 성격 ; 조선후기의 인구파악 실상과 그 성격- 단성현 호적 분석」,『대동문화연구 39』,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1, p.160.
김경란, 「《丹成縣戶籍大帳》의 ‘女戶’ 편제방식과 의미」,『한국사연구』126, 한국사연구회, 2004, pp.151
김건태,「前引文」, p.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