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관람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10.06.26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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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내가 이 미술관을 찾았을 때 받은 첫 느낌은 꾸며지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나무들은 사람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듯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입구 옆에 조그만 개집에서 나른한 오후의 낮잠을 자고 있는 강아지의 모습도 평화로워 보였고 왠지 모를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으며 미술관 앞마당으로 들어갔다.
(사진) 간송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모습 (후략)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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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간송 박물관은 한국 전통 미술품을 주로 소장하고 있는 한국 최초의 만간 박물관으로 1966년 설립된 이래 미술사 연구의 산신(産室)로서의 역할을 주로 해오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매년 2회에 걸쳐 논문집 <간송문화(澗松文華)> 발행과 함께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 <간송문화>는 1971년 창간되었고 발행된 책자로 <추사명품집(秋史名品集)>, <겸재명품집(謙齋名品集)> 등이 있다. 국보급의 문화재 만도 10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 미술관을 설립한 간송 전형필 선생은 1926년 휘문고보를 거쳐 1929년 일본 와세다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오세창(吳世昌)의 지도로 민족문화재를 수집하는 데 힘스는 한편, 한남서림을 지원 ․ 경영하며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1940년 경영난에 빠진 보성고보를 인수하여 교주(校主)가 되었으며, 1945년 광복이 되자 보성 중학교 교장직을 1년간 맡기도 했다. 1954년 문화재 보존위원이 되고, 1956년 교육공로자로 표창받았다.
수집한 문화재는 그의 개인 박물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에 보존하였는데, 수집품 중에는 1942년 일본인 몰래 안동에서 거금 2,000원을 주고 구입한 <훈민정음(訓民正音)> 원본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서적, 고서화, 석조물, 자기 등이 있으며, 10여 점 이상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1962년 문화포장, 1964년 문화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두산 세계 대백과
내가 이 미술관을 찾았을 때 받은 첫 느낌은 꾸며지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나무들은 사람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듯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입구 옆에 조그만 개집에서 나른한 오후의 낮잠을 자고 있는 강아지의 모습도 평화로워 보였고 왠지 모를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으며 미술관 앞마당으로 들어갔다.
(사진) 간송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모습
미술관 건물로 들어가는 곳에는 사자 모양을 한 조각상 두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건물을 지키는 수호신과 같은 모습하고 있는 조각상이 듬직해보였다.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재를 지키고자 했던 전형필 선생의 의지를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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