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문화재 탐방조사
- 최초 등록일
- 2010.06.23
- 최종 저작일
- 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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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고장 문화재 탐방조사
목차
※무형문화재
▶진주 입춤
▶진주 검무
▶진주․삼천포 농악
▶촉석루
▶진주성
▶호국사
▶서장대
▶의암
▶국립진주박물관
※유형문화재
▶평거동 고려 고분군
▶평거 석조여래좌상
본문내용
▶진주 입춤
진주 입춤은 3분의 4박자에 맞추어 추는 춤으로 1900년대 이후 승무와 더불어 기방에서 예술적으로 다듬어졌으며 1930년대 한성준옹이 고전무용으로 승화시켰다. 이 춤은 당대 명기들이 소리 및 진행, 연출을 맡았으며 춤사위도 그 이름이 대삼, 소삼, 잉어걸이, 완자걸이 등 음악의 창법이나 가락의 호칭과 혼합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입춤은 네가지 요소인 한․흥․멋․태를 고루 갖추었으며, 이를 거의 완벽하게 보여주기위한 춤으로 정립되었다. 춤은 차분하고 끈끈하고, 섬세하면서도 애절한 몸놀림으로서 정중동의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어 무아지경으로 이르게 하는 매력을 갖추고 있다.
조선왕조의 몰락으로 관기제도가 폐지됨으로써 궁중 기생들이 기녀조합을 결성하게 되었고 가․무․악으로 그들의 생업을 삼게되었거니와 이 경우 일부 무당의 노래와 춤을 받아들인 것이 곧 입춤의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진주 검무
기능보유자 : 김수악 성계옥
기능보유자후보 : 정필순
전수보조자 : 정금순 조순애 강광근
이수자 : 박설자 김태연 박말필 정영숙
1987년 12월 2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 12호로 지정된 민속무용으로서, 진주시 신안동 15-24에 있는 진주민속예술보존회에서 전승되고 있다.
진주 검무(劍舞)는 경상남도 진주지방에 전승되는 검무를 가리킨다. 칼춤은 여러 민족에 의해 연희되고 있다. 우리 민족도 예로부터 칼춤이 있었겠지만 상고시대 칼춤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동경잡기`, `문헌비고`와 같은 문헌에는 가면을 쓴 채 칼을 들고 춤을 추는 창랑의 검무가 나오는데 이 검무가 `삼국사기`에 보이는 신라 품일장군의 아들 관창의 고사를 춤으로 엮은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