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 최초 등록일
- 2010.06.19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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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광풍이 한바탕 지나가더니, 공중에서 요괴가 한 마리 내려왔다. 그놈은 정말 추악하게 생겼는데, 시커먼 얼굴에 짧은 털, 길게 삐죽이 나온 주둥이에 큰 귀, 푸른 것 같지만 푸르지도 않고 쪽빛인데 쪽빛도 아닌 괴상한 빛깔의 면 승복을 입고, 꽃무늬 수건을 동여매고 있었다. … 요괴가 눈을 돌려보니, 꽉 다문 이와 빼어 문 주둥이에 불 같은 눈과 금빛 눈동자에 털북숭이 얼굴을 한 손오공이었다. 바로 살아 있는 벼락신의 모습 같았다. 요괴는 놀라서 다리가 풀리더니 북 하고 옷을 찢어버리고 광풍으로 변해 달아나버렸다. 손오공은 급히 내달리며 여의봉을 휘둘러 바람을 한 차례 내리쳤다. 그러자 요괴는 만 갈래 불빛으로 변해 원래 살던 복릉산으로 가버렸다. 손오공은 구름을 타고 재빠르게 쫓아갔다. … (제18회)
목차
1. 성서과정과 작가
2. 기괴하고 환상적인 신화의 세계
3. 대립과 통일의 예술미
4. 소설사적 위치와 영향
본문내용
1. 成書성서과정과 작가
역사에는 소설 『서유기』의 주된 골자가 되고 있는 玄奘현장의 取經취경 이야기가 있다. 『舊唐書구당서․方伎傳방기전』과 기타 야사의 기록에 의하면, 현장은 河南하남 洛陽낙양 사람이며 이름은 陳褘진위이고 大業대업 말년에 출가하였으며, 현장은 그의 法名법명이다. 그는 타고난 뛰어난 총기와 오랫동안 쌓아온 탐구정신으로 인해 불가에서 ‘千里駒천리구’의 명성을 얻었다. 그는 불법의 도리를 추구하기 위해 불교 번역서들을 읽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멀리 서역으로 가서 진짜 불경을 가져올 것을 결심하게 되었으며, 唐당나라 太宗태종 貞觀정관 3년(629)에 長安장안을 떠나 상인의 무리에 섞여 국경을 넘어 원정을 시작하였다. 玉門關옥문관을 나와 新疆신강 北道북도를 지나 葱嶺총령을 넘어 熱海열해를 빠져나온 후 24국을 지나 5만 리 넘는 길을 지나 印度인도에 이르렀다. 인도에서 13년을 보내고 정관 19년(645)에 현장은 명예롭게 귀국하였는데, 657부의 梵文범문 經論경론을 가지고 돌아왔다.
현장의 취경 이야기는 우선 종교의 신화화 단계를 거치는데, 현장이 쓴 『大唐西域記대당서역기』에서 『慈恩三藏法師傳자은삼장법사전』에 이르기까지 또 『獨異記독이기』에서 『太平廣記태평광기』의 『異僧이승․玄奘현장』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이 종교 이야기가 신화화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현장의 취경 이야기가 진정으로 역사 이야기에서 문학 이야기로 전환된 것은 당대 사원의 ‘俗講속강’의 성행 때문이다. 승려들의 講唱강창에서 취경 이야기는 역사의 속박을 벗어나 놀라운 신화 이야기로 변하였다. 南宋남송의 『大唐三藏取經詩話대당삼장취경시화』는 당․五代오대 사원의 속강의 저본으로, 늦어도 남송 말년(1278)에는 현장의 취경 이야기가 이미 詩話시화가 있는 완전한 허구의 문학 이야기로 엮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서유기』의 이야기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 서유 이야기의 하나의 전환점임에 틀림없다.
『서유기』 탄생 이전에 元代원대의 『唐三藏西天取經당삼장서천취경』(吳昌齡오창령), 『二郞神醉射鎖魔鏡이랑신취사쇄마경』(무명씨)과 明代명대의 『西遊記雜劇서유기잡극』(楊景賢양경현), 『二郞神鎖齊天大聖이랑신쇄제천대성』(무명씨) 등의 중요한 ‘西遊戱서유희’가 있었다. 오창령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神魔신마적 대결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雜劇잡극은 종교 이야기의 속박에서 벗어나 시민문학의 특성을 표현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