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의 이주역사
- 최초 등록일
- 2010.06.18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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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으로의 이주역사
목차
1. 1. 1. 이주의 역사
1.1. 1.1. 1.1. 제 1 기 : 생계 목적의 농민 이주 (19세기 중엽∼한일 합병)
1.1. 1.1. 1.1. 제 2 기 : 항일 목적의 애국 지사 이주(한일 합병∼만주 사변)
1.1. 1.1. 1.1. 제 3 기 : 일본에 의한 강제 이주(만주 사변∼일본 항복)
1.1. 1.1. 1.1. 제 4 기 : 안착기(중국 공산 정권 수립 이후)
본문내용
1. 1. 1. 이주의 역사
오늘날 중국 조선족의 분포는 19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한인 한인(韓人) : 한국인으로서 특히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
의 중국으로 이주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 조선족의 형성과 발전 과정 측면에서, 조선족의 이동은 대체적으로 3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19세기 중엽부터 《한일 합병》에 이르는 제1단계에서는 주로 생계를 위협받던 농민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중국 동북 지방으로 이주하였던 시기였다. 《한일 합병》부터 《만주 사변》에 해당되는 제2단계에서는 나라 잃은 슬픔을 벗고 항일 운동을 하기 위하여 애국지사 중심의 망명 이민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던 시기였다. 제3단계는 《만주 사변》부터 《일본 항 복》에 해당되는 시기로, 일본과 만주국이 만주로의 한인 이주 정책을 공동 추진함으로써 생활이 빈곤한 한인들이 만주로 이주되었다. 그리고 《중국 공산화》이후에 귀국하지 못한 한인을 중심으로 동북 3성에 조선족 자치주가 형성되면서 오늘날 중국 조선족 분포가 거의 형성되었다.
이처럼 한민족의 중국으로 이주는 농업 이민에서 망명 이민, 반강제 이민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 중국 조선족에 이르게 되었다.
1.1. 제 1 기 : 생계 목적의 농민 이주 (19세기 중엽∼한일 합병)
청나라는 청 태조의 발상지인 백두산 이북 일천리 지역을 성스러운 지역으로 지정하는 이른바 봉금령을 선포함으로써, 어떠한 사람도 이 지역으로의 이주와 개간을 금지하여 왔었다.
19세기 중엽이후 청나라에서 혼강유역 벌목사업에 한인을 고용하면서부터 한인들은 만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들 한인들은 벌목을 하는 한편 강유역의 비옥한 땅을 개간하고 마을을 형성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