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기독교 부흥사
- 최초 등록일
- 2010.06.15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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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초대기독교 부흥사 길선주 김익두 이용도
목차
A . 생애 요약
1. 출생부터 기독교 입신 전까지
2. 기독교 입신에서 1907년 대부흥운동 전까지
3. 1907년 대부흥운동 때부터 임종 때까지
B . 시대적 배경
1. 정치적 배경
2. 사회적 배경
3. 기독교적 배경
C. 부흥운동의 특징
1. 사경회를 통한 말씀중심의 부흥운동
본문내용
A . 생애 요약
1. 출생부터 기독교 입신 전까지
길선주(吉善宙)목사는 성균관 박사 길재(吉再)의 19대 손으로 1869년 3월 15일 평남 안주군 성내 후장동에서 길봉순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길진경,「靈溪吉善宙」(서울: 종로서적, 1980), 15쪽.
이름은 선주이고 자는 윤열(潤悅)이며 도호는 영계(靈溪)이다. 그의 부친은 무관으로 엄격했을 뿐만 아니라, 건강, 지식, 정직, 견인, 창의성을 가훈으로 하여 자녀들을 엄격하게 교육했다. 그의 모친은 한학에 조예가 깊었고 정숙 온화 하였으나 자녀교육에는 엄격하였다. 그러나 비교적 가정의 전체적 분위기는 행복스러운 가정이었다. 길선주는 네 살 때부터 가정에서 한문을 배우기 시작했고 일곱 살 되던 해에 당시 이름 높은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서 한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특히 길선주는 사물에 대한 사고력이 뛰어났으며 정서가 풍부하였다. 그가 여덟 살 되던 해에 우연히 집을 지나다가 인생이 나그네 같음을 느끼고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길선주는 열 한 살 때 안주 성내 신설달협씨의 열 여섯 살 되는 외동딸 선행(善行)양에게 장가들었다.
길선주의 가정은 의·식·주에 대한 예의범절과 규율, 상·하에 대한 예절, 남·여의 구별과 같은 것을 지키는 특유한 가풍이 있었고 이에 따른
3. 이용도 목사의 신비주의의 영향과 그 평가
첫째, 그는 새로운 스타일(용도식)의 부흥회를 시작하였다. 그의 부흥회 스타일은 선교사들이 주도했던 1907년의 부흥회와는 아주 다른 토착적인 신비주의 타입의 집회 형식이었다. 그는 사람을 인위적으로 모으려고도 하지도 않았고 조직하거나 선전하며 꾀를 부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설교를 하지 않고 기도만 몇 시간씩 하거나 또는 공중 기도를 3-4시간씩 시킴으로써 집회를 끝마치기도 하였다. 그의 설교는 어떤 인간적 기교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삶 전체를 청중들에게 문자 그대로 주는 것이었다. 집회기간동안 그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엎드려서 기도하면서 스스로가 은혜를 사모함으로써 청중들에게 그 본을 몸소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러한 이용도 목사의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뜨거운 열정을 배워야 하겠다.
둘째, 이용도 목사는 자기 만족에 빠진 당시 교계 지도자들 곧 선교사, 목사, 부흥사들에게 교만과 파벌 등에 대한 그들의 자성을 촉구함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바리새적인 교리와 형식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비록 짧은 기간이긴 하였으나, 그는 새 생명의 바람을 전국 교회에 불러 일으켜 1930년대 초기의 교회를 부흥 내지 개혁시켰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