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론] 양주별산대 놀이
- 최초 등록일
- 2002.05.17
- 최종 저작일
- 2002.05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희곡론-양주별산대놀이에 대한 리포트
목차
1. 양주별산대 놀이의 유래와 전승
2. 탈의 사용
3. 마당의 의미
4. 양주별산대 놀이의 구조
5. 양주별산대 놀이의 내용
6. 양주별산대 놀이의 주제
본문내용
**양주별산대 놀이의 유래와 전승
산대 놀이는 麗朝 말엽, 즉 佛敎 전성시대에 상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李朝시대에는 한양 사직골에 근거를 두고 일명 '딱딱이패'들이 공연을 함으로써 '딱딱이극'이라 불리어 왔다. 양주읍에서는 약 백 이삼 십 년 전부터 연중행사로 4월8일, 5월단오를 기하여 한양 사직골의 '딱딱이극'을 초청하였으나 사직골 딱딱이패 극은 벌써 타지방과 약속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양주에서는 놀이를 못하게 되었다. 이를 불편하게 느낀 양주의 신명이 과한 자들끼리 가면을 만들어 실연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양 사직골의 딱딱이패극은 쇠퇴하여 자취를 감추게 되고 여타 다른 지방에서의 산대놀이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으나, 양주에서만이 유지하고 있던 중 6·25 사변으로 인해 가면과 도구 일체가 불에 타서 없어지게 되었다. 생존자 사오 인이 가면과 도구등을 만들었으나, 연기자 부족으로 그 명맥만 유지하게 되었다. (조동일-탈춤의 역사와 원리 中)
양주별산대 놀이의 유래에 대해 송석하와 아키바다카시는 애오개 본산대 놀이의 영향, 조동일은 그의 양주별산대 놀이본(1957년)에서 사직골 딱딱이패의 영향, 1930년에 필사된 양주별산대 놀이 김지연 본의 제보자인 조종순은 구파발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양주별산대 놀이의 유래에 대해 여러 의견이 제기 되었지만,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