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의 역사 4장
- 최초 등록일
- 2010.06.11
- 최종 저작일
-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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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건축의 역사 4장
목차
제 4장(9∼10세기)
고대 규범을 벗어나는 신라말 고려초기 건축
1. 불교 사찰건축의 고대 규범 탈피
2. 9세기의 석탑과 부도
3. 지역성의 대두
4. 풍수지리성의 유행
본문내용
제 4장(9∼10세기)
고대 규범을 벗어나는 신라말 고려초기 건축
1. 불교 사찰건축의 고대 규범 탈피
9∼10세기 사이에 불교사찰의 건립은 한반도 각 지역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물론 인적 없는 깊은 산골짜기에도 사찰이 속속 건립되었다. 이런 사찰에서는 신라의 반도 통일 이후부터 유행되어 온 쌍탑식 가람구성이 여전히 계승되었지만 탑을 하나만 건립하는 것이 더 널리 수용 되었다. 금당 앞에 탐을 두 개 대칭으로 두는 방식은 9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계속되었다. 그러나 두 탑과 금당과의 관계에는 8세기 전형적인 쌍탑식과는 다른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경상남도 울주 간월사지는 이러한 가람구성의 새로운 움직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비록 지상에 건물이 남아있지 않지만 금당과 금당 앞 좌우 석탑의 배치관계는 충분히 파악된다. 이 가람의 배치 특징은 금당과 쌍탑의 거리에 있다. 금당과 두 탑의 거리가 각각 34m가 되고 두 탑 간의 거리는 50m나 된다. 8세기 전형적 쌍탑에서 금당과 탑의 거리는 보통 10m 이내이고 두 탑 간의 거리도 규모가 큰 사찰이라도 20m를 넘지 않았다. 전형적인 쌍탑가람과 비교하면 큰 차이를 보인다. 간월사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북쪽 탑이 자연 암반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점이다. 북쪽 탑이 서있는 자리는 커다란 바위가 자연스럽게 평탄한 면을 이루고 있는 자리이며 인공적으로 탑의 위치를 계획하는 대신 자연 암반을 활용하려는 새로운 발상이 엿보인다. 통일신라 이후 경주 남산에는 소규모 석탑이 곳곳에 세워졌다. 이런 석탑 중에는 따로 기단을 두지 않고 자연 암반 위에 세우는 예들이 있다.
참고 자료
한국건축의 역사 김동욱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