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겸의 실패요인에 대한 분석
- 최초 등록일
- 2010.06.08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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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자겸의 난과 이자겸의 실패요인
목차
Ⅰ 머리말
Ⅱ 이자겸 폐행에 대한 排他心
Ⅲ 군사적 세력의 유동성
Ⅳ 혈연 ․ 혼인관계의 반이자겸 세력
Ⅴ 척준경의 변심
Ⅵ 맺음말
【참고】
본문내용
Ⅰ 머리말
이자겸은 인주이씨 출신으로 문종에서부터 인종 대 까지 7대에 걸쳐 80년간 자신의 가문에서 10명의 왕비를 배출하고 문벌을 형성한 인물이다. 이자겸은 왕실의 외척으로서 권병을 잡아 권세와 위복을 누린 고려 최대의 귀족세력이었으며, 그는 왕권을 거의 능가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이자겸의 세력기반에 대해서는 왕실과의 독점적인 혼인과 토지 등의 경제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이며 이러한 사실들은 이자겸의 권력 장악에 대한 시발점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자겸의 난은 궁궐에 불을 지르고 왕에게 활을 겨누는 등의 고려 후기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난의 성격으로 보아 이자겸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난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자겸의 난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고려 후기 최고의 권세를 누린 이자겸이 몰락하게 된 이유를 비단 이자겸의 난에 대한 결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만 고려사 열전에 나타난 그 밖의 이유들에 대해 이 글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이자겸 폐행에 대한 排他心
이자겸의 폐행이 얼마나 심했는가는 고려사 열전을 보면 잘 묘사되어있다. 이자겸이 상복을 벗고 관직에 다시 오를 때 큰 비가 내리며
참고 자료
- 고려사 열전 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