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 최초 등록일
- 2010.06.07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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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울시립미술관
목차
건축 특징
전시실 개념
평면도
주요설비
기타
본문내용
서 울 시 립 미 술 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통하는 길은 전통, 현대, 자연이 공존하는 최고의 산책로이자 낭만과 문화의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에 덕수궁을 비롯해 (구)러시아공사관, 중명전, 서울역사박물관 등이 자리하고 있어 역사 탐방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각종 국내외 블로그와 카페에는 서울에서‘사진 찍기’가장 좋은 명소로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또 다른 매력은 관람료가 저렴하기도 하지만 유명작가의 전시부터 마니아적 상상력에서 비롯된 유쾌한 작품들이 실내뿐 아니라 옥외에서도 전시된다. 최근 가정의 달과 하이서울페스티벌 기간에 맞추어 미술관 주변을 전시공간으로 확장하여 개최되는 <2009 미술관 봄나들이_미술관 습격사건>도 그런 전시 중 하나다.
그러나 서울시립미술관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가 서려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재판소 건물이었다. 당시 이 공간에는 수많은 애국지사가 일제가 만들어 놓은 치안유지법에 의해 재판을 받고 구금, 학살되었다. 해방후에 대법원 건물로 사용되면서 특정한 시기에는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사법살인이 자행되었던 공간이기도 했다.
옛 법원 터,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성 재판소 부지의 유래는 1886년 국립 육영공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1895년 3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재판소인 평리원(한성재판소)이들어섰다. 평리원은 공평동 부근에 신축건물을 세워 이전하였고, 옛 평리원 건물은조선총독부 조사국 분실로 사용되어왔다. 그 후 1926년 총독부는 정동 옛 평리원부지에 이른바 경성3재판소를 세우기로 하고 대지 4,680평을 확보하였다. 경성재판소는 일본인이 설계하여 1927년 착공되었고, 1928년 11월 9일 준공 후 고등법원,복심법원, 지방법원의 3번원이 들어섰고, 해방 후에는 대법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경성재판소는 건축 당시 평면은 일(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