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봉건제에 대한 정리와 더불어 프랑스와 영국의 봉건제도에 대한 고찰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봉건제도에 대한 고찰
1-1. 봉건제도의 어원
1-2. 봉건제도의 특징
1-3. 존 스튜어트 「봉건제에 대하여」
2. 중세 초기의 토지제도
2-1. 카를 마르텔의 토지제도
2-2. 샤를마뉴의 토지제도 개혁
3. 프랑스에서의 봉건제도
3-1. 9세기 프랑스의 장원제도
3-2. 9~12세기 프랑스의 장원제도
4. 영국에서의 봉건제도
4-1. 영국에서의 11세기 중반의 변화
4-2. 노르만 정복 이후의 장원제의 강제적 시행
5. 프랑스와 영국의 봉건제도의 비교
5-1. 재판권에 대한 프랑스와 영국의 입장 비교
5-2. 14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차이와 공통적인 변화
5-3. 영국의 인클로즈 운동
5-4. 프랑스의 변화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봉건제란 주로 종신의 주군에 대한 봉사제도 이러한 군사적 봉사에 대한 보수로서 급여 또는 대여된 토지(Beneficium:은대지) 보유(Tenure)에 관한 법적 제도를 뜻한다. 「봉건제」, 나중일, 까치, 1988, p.8
여기서 말하는 것은 하나의 신분계급들 사이의 계약을 뜻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기사와 영주간의 계약, 왕과 영주간의 계약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후자의 경우는 영주와 생산자이 입장에 서있는 세금 납부의 의무를 가지고 있는 소작농과의 계약관계를 뜻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봉건제도와 프랑스, 영국의 제도를 논의하기 전에, 전제해두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이 시기의 생산이란 농업을 통한 생산이란 것이다. 비옥한 토지를 가진 어떤 지역들에 한정되어 나타는 현상일 뿐, 이는 특정시기를 대표하는 현상이라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의미와 특징에 따라 대표하는 현상이라 볼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것은 농업국가에 한해서 살펴지는 것이고, 그것이 농민과 지주의 입장 그이상의 어느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것이 그 시기만의 특징으로 간주해야 하며 보편사적인 진보의 한 흐름으로는 볼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프랑스 지방과 영구의 토지제도는 이후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서유럽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반드시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시 서유럽에서 정착을 했던 문화로서의 그들의 토지제도를 살펴보아야 함은 중요한 문제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정착한 지방 속에서 약간의 다른 과정을 보인 프랑스 지방의 토지제도와 계약관계를 영국의 것과 비교해 보고 이후에 상업과 관련하여 양 나라의 다른 선택에 대해 논의하고 그것이 현재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이것을 이야기하기 전 우선 ‘봉건제도’에 대한 의미와 기원, 그리고 그 속의 토지제도 등에 대해 먼저 논의해 보겠다.
참고 자료
『봉건제』, 나종일, 까치, 1988
『세 위계 - 봉건제의 상상세계』, 조르주 뒤비, 성백용, 문학과 지성사, 1997
『현대성과 현대문화』, 존 스튜어트
『중세 유럽의 사회와 문화』, 이원근, 중문출판사, 1995
『프랑스의 역사』, 다니엘 리비에르, 최갑수, 까치글방, 1998
『서양의 장원제 - 프랑스와 영국 장원제에 대한 비교사적 고찰』, 마르크 블로크, 이기영, 까치, 2002
『중세의 세계』, 프리드리히 헤르, 김기찬, 현대지성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