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건축과 건축가 박길룡
- 최초 등록일
- 2010.06.07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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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근대건축과 건축가 박길룡
목차
1. 서론
2. 한국의 근대건축
2.1 구한말의 근대건축
2.2 일제시대의 근대건축
2.3 해방이후의 근대건축
3. 건축가 박길룡
3.1 박길룡의 생애
3.2 박길룡의 건축
3.3 화신백화점
4. 결론
본문내용
자생적 건축발전과정으로서의 서구의 근대건축은 역사적·문화적 여건들이 성숙되면서 자연스럽게 축적된 결과이며 그러한 서양건축이 ‘건축은 그 시대의 힘’이라는 대명제를 앞세워 동아시아로 건너왔다. 유럽 산업사회의 종자인 양풍건축은 동아시아, 중국, 일본에 먼저 스며들었고 한국이 받아들인 것은 중국과 일본을 통한 2차적인 전이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이나 일본도 사회·경제적인 여건에서는 근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내재적인 근대건축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 서구유럽이 그들에게 이식한 양풍건축을 그대로 베껴서 한국에 전달한 것이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박길룡의 업적은 실로 기념비 적이다. 엄혹한 일제 강점기에 조선 민중이 필요로 하는 조선의 건축을 하겠다며 당당히 나서 한국인 최초로 건축사무소를 열고 건축 잡지를 창간하며 계몽운동을 벌이는 등, 우리 건축계에 긍지를 심어 준 그는 분명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기억해야할 거목이다. 이제 우리는 그를 다시 돌아볼 시점이라 생각하고 미흡하나마 그의 업적을 돌아본다.
4. 결론
박길룡은 1943년 4월 27일 4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박길룡의 이력서를 보면 1942년 4월부터 이화여전 강사로 나간 것으로 되어있다. 촉탁 형태였으며 가사전수과에서 주택문제를 주로 강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세상을 떠난 1943년 「조선과 건축」 5월호는 ‘박길룡 특집’을 싣고 그의 작품세계와 경력, 그를 추모하는 조선인, 일본인 동료들의 글을 실었다. 박길룡 사후 ‘박길룡 건축사무소’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며 김세연이 소장으로 그 일을 이어 나갔다. 김세연은 경성공업전문학교 후배로 박길룡건축사무소 직원이었다.
망우리 묘지는 지금 망우리 공원이 되어 있다. 이곳에는 1933년부터 73년까지 쓴 묘 2만 9600기가 모셔져 있다. 박길룡의 묘는 경기도 구리시 쪽에 있다. 아차산과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이다. 더구나 그 곳은
참고 자료
1. 한국 건축문화사 개설. 최장순, 기문당, 2006.
2. 한국 근대 건축물의 보전관리지침 구성방안 연구.
명지대학교대학원 건축공학과 박근수, 2003, 박사학위논문
3. 한국 근대건축 활용 방안에 관한 연구.
경일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이주형, 2005, 석사학위논문
4. 1910~1994년, 종로1가에서 종로3가 사이의 가로와 가로변 건축물의 변화과정에 관한 연구.
명지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박명길, 1994, 석사학위논문
5. 기타 인터넷 검색 : naver, google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