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궁의 변화
- 최초 등록일
- 2010.06.03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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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울에 있는 5대궁에 대한 설명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설명
목차
1. 머리말
2. 본 론
(1) 궁의 의미와 종류
(2) 경복궁
(3) 창덕궁과 창경궁
(4) 덕수궁
(5) 경희궁
3. 결 론
본문내용
1. 머리말
서울은 고대국가의 등장 때부터 중요한 위치중 하나였다. 한반도의 가운데라는 위치적 이유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강도끼고 있는 지리적 이유 때문이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도읍지로서 여러 토성(풍납토성, 몽촌토성)이 남아있고, 고구려의 온달장군이 죽은 것으로 유명한 아차산성도 위치하고 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남경이라는 이름으로 수도 개경, 지금의 평양인 서경과 더불어 3대 중요 도시중 하나였다. 이런 서울은 조선시대의 개국과 함께 수도로 자리잡게 되고,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조선시대 개국과 함께 천도가 이뤄짐으로써 서울에는 왕의 거처인 “궁”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지어진 궁이 바로 경복궁이다. 서울에는 지금도 조선시대의 궁인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 등이 남아있고, 경희궁은 거의 모습이 사라졌으나 그 존재와 위치는 아직도 남아있다. 왜 수도에 이렇게 많은 궁들이 건립되었으며 이 궁들은 무슨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현재의 궁의 관리와 앞으로의 발전방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2. 본론
(1) 궁의 의미와 종류
궁은 기본적으로 일국의 최고 통치자인 왕이 거주하면서 신민들을 통치하던 곳이다. 세계어느 나라의 경우건 궁은 그 규모가 크고 화려해서 일반민들에게 통치자의 위엄과 권위를 과시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또한 일반 사람들은 감히 쳐다보거나 들어갈 수 없는 공간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3. 결론
조선시대에는 많은 궁궐들이 건축되었고, 사용되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등이 그것인데, 이들은 각기 역할이 달랐다. 정궁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이궁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궁으로 사용시에는 왕이 특별히 오래 거처하는 궁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궁은 대부분이 임진왜란때 한 번 소실되면서 큰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왕들의 중건의지에 따라 대부분의 궁이 다시 복원되고, 마지막으로 고종때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을 계기로 조선의 5대 궁은 다시 그 모습을 어느 정도 찾아간다. 하지만 이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의 시작과 함께 우리 궁의 훼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뤄진다. 거대한 규모가 반토막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전각은 철거되며, 일본의 건물로 가려지기도 했다. 심지어는 100% 없어진 궁도 생겨났다. 일본은 궁이 조선을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궁을 축소하고, 출입이 쉽게되면 왕권이 약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참고 자료
1. 서울의 문화유산 탐방기, 숲과 나무, 1997, 김동원
2. 경복궁 홈페이지 http://www.royalpalace.go.kr
3. 창덕궁 홈페이지 http://www.cdg.go.kr
4. 창경궁 홈페이지 http://cgg.cha.go.kr/
5. 덕수궁 홈페이지 http://www.deoksugung.go.kr/
6. 서울역사 박물관 - 경희궁 소개 http://museum.seoul.kr/kor/gyeung/1173415_698.j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