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조화report
- 최초 등록일
- 2010.06.02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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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에이뿔맞으세요 ~~
목차
●화조화 [花鳥畵] 의 사적적 의미
●화조화의 역사
●화조화의 유형과 작품
●화조화의 대표화가와 그의 작품
본문내용
화조화의 역사를 보면 화훼화는 중국의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221_586)부터 그려지기 시작했다. 오대(五代)에는 수묵을 위주로 수수한 그림을 그린 서희(徐熙)와 채색을 위주로 화려한 그림을 그린 황전이 중국 화조화의 쌍벽을 이루었는데, 이들의 그림은 그 후의 화조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 중국의 화훼화가 풍성하고 화려하며 치밀하고 장식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은, 서희풍보다는 황전풍이 그 동안 더욱 인기리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중국의 꽃 그림은 지나칠 정도로 요란하여 호사스럽고 화려하다. 서희풍도 여러 화파로
이어지면서 발전했으나 황전풍에 미치지는 못했다.
송대(宋代)와 원대(元代)에 치밀하고 장식적인 화조화가 특히 많이 그려졌으며, 청대(淸代)에 이르러는 조지겸(趙之謙), 오창석(吳昌碩), 제백석(齊白石) 등에 의해 수묵화 양식의 새로운 화조화가 유행하게 되었다.
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꽃과 벌레를 소재로 택했으며, 표현이 순진하고 소박하여 한국적 심성이 잘 드러나 있다.화조화와 화훼화를 특별히 구분하지는 않는데, 이는 초기의 화조화가인 당의 조광윤, 오대후촉의 서희와 황전, 그리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많은 작가들이 화초와 새를 함께 그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화조화는
-신사임당 (1505 ~ 1511)
현모양처의 귀감이 되는 조선중기 여류 서화가. 시문(詩文)과 그림에 뛰어나 여러 편의 한시(漢詩) 작품이 전해진다. 조선조 화단의 태두 안겸의 화풍에 영향을 받았으며 화풍(畵風)은 여성 특유의 섬세 정묘함을 더하여 한국 제일의 여류화가라는 평을 듣는다.
1.신사임당의 초충도
신사임당의 <초충도〉비슷한 구도의 초충이 그려진 여덟 폭의 병풍인데, 현재는 열 폭으로 꾸며져 있다. 그림이 아닌 나머지 두면에는 신경과 오세창의 발문(跋文)이 적혀 있다.
각 폭마다 화면의 중앙에 두 세 가지의 식물을 그린 다음에, 그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풀벌레를 적당히 배치하여 좌우 균형과 변화를 꾀하였다.
이 〈초충도〉는 형태가 단순하고 간결하여 규방(閨房)의 여성들이 필수적으로 하던 자수(刺繡)를 위한 밑그림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여러 가지 청초한 식물과 풀벌레를 실물에 가깝게 정확하게 묘사하면서도, 섬세하고 선명하게 필선으로 묘사하여 여성 특유의 청초하고
산뜻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가지와 방아개비
/종이에 담채/33.2x28.5cm
제1폭에는 가지·방아깨비·개미·나방·벌 등이 등장하고 있다.
땅위에 개미 한 쌍과 방아깨비가 기어다니고, 위쪽에는 나비·벌·나방이 날고 있다. 자연 생태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