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고려지배
- 최초 등록일
- 2010.06.01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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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몽골의 고려지배 기간을 문화사적 관점에서 분석함
목차
Ⅰ. 머리말
Ⅱ. 30년 전쟁의 시작과 이면의 정치적 성향
Ⅲ. 몽골의 제주도 지배
Ⅳ.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다루는 여몽전쟁
본문내용
Ⅰ. 머리말
13-14세기의 원 간섭기라 불리는 이 시기는 고려와 몽골 사이에 조공-책봉관계가 맺어진 시기이다. 이는 전근대의 동아시아 역사 중 유일한 관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가 끝까지 몽골에 항전하다가 자주성을 인정해주는 조건의 협약으로 맺어진 관계로 알리고 있다. 하지만 과연 어떠한 정치적 상황 없이 끝까지 항전하는 고려인의 모습으로 인한 협약이라는 것은 대단히 뜬 구름 잡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따라서 몽골과 고려 사이의 협약체결까지 정치적 양상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고 이에 대해 문화사적 관점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가 몽골의 고려의 지배에 대한 관점을 수립해야 한다. 먼저 관점을 수립하기 앞서 4가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1. 몽골지배가 고려에 안 좋은 영향만 끼쳤는가?
2. 고려는 몽골의 지배를 끝까지 거부했는가?
3. 몽골은 무조건 제압하려했으나 고려의 정신에 감동하여 인정해주었다?
4. 몽골의 고려지배가 고려, 즉 우리나라에 있어 수치스러운 역사인가?
Ⅱ. 30년 전쟁의 시작과 이면의 정치적 성향
1231년(고종 18년), 몽골은 본격적으로 고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직 확실한 침략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몽골은 자국 자신 저고여 피살을 명분으로 고려를 공격하였다. 당시 몽골은 1233년 금에 결정적인 공격을 하기 전에 이미 금을 둘러싼 영토를 모두 정복한 상태였다. 그 이전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몽골은 13세기 초 동북아시아의 주변 일대를 모두 정복하였다. 이로 인한 금은 세력이 약해졌고, 그 안에서의 내부분란도 일어나고 있었다. 이때 반란은 야율유가, 야율사포 마지막에는 결노가 거란 유민을 지휘하게 되었는데, 앞서 몽골에 투항한 야율유가에 의해 인도된 몽골군의 공격을 받고, 반란군 진압을 위한 금의 군대와도 충돌을 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한 거란 유민 9만명이 고려 영토내로 들어가게 된다. 이로 인하여 고종 5년 몽골군은 거란 유민의 토벌을 선언하며 고려에 진입하게 된다.
몽골군은 자연재해로 고려의 협조를 구하게 되는데 이와 동시에 거란 유민을 물리치고, 조약을 맺어 형제가 될 것을 요구하였다. 허나 고려는 군사적 도움만 수락하였고, 협약요청은 거절하였다. 하지만 여몽 연합군이 거란 유민을 축출했고 이로 인하여 고려와 몽골사이에는 형제맹약을 거절하지 못하고 수립하게 되었다. 형제맹약이라 함은 몽골이 타 국가와의 관계를 가족 간의 친족관계로서 나타내고자 한다하였을 때 비교적 종속관계가 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