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주의 체제의 형성과정
- 최초 등록일
- 2010.06.01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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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 17세기, 절대주의(Absolutism) 체제가 형성되는 과정을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서술한 짤막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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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유럽 각국은 15세기 이후 중무장 기사대로 대표되는 중세 봉건 체제가 붕괴하자 왕이 중앙에서 권력을 소유하는 절대주의 체제를 성립하였다. 절대주의체제는 사상적으로는 왕권신수설로, 경제적으로는 도시의 시민계급으로 뒷받침되었던 국가 형태이다. 왕권신수설은 군주의 권력은 신에게서 부여 받은 것이므로 군주의 보호 아래 살고 있는 신민은 모두 군주의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왔으나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특히 중요성을 띄게 되었다. 또한 시민계급은 중세 봉건 시대 영주의 토지에서 도망친 농노, 상인 등으로 구성되었던 도시 거주민들로서 왕에게 세금을 바치는 대가로 귀족들의 지배를 면하고 있던 계급으로 왕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하여 왕이 의회와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여기에서는 프랑스와 영국 두 나라의 절대주의 체제의 형성과정을 비교하고자 한다. 프랑스와 영국의 절대주의 체제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었는데 먼저 영국은 일찍부터 중앙집권체제를 성립하여 절대주의 체제를 성립시켰으나 결과적으로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하였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뒤늦게 중앙집권체제를 성립하기 시작하여 유럽식 절대주의의 전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은 노르망디공 윌리엄(William of Normandy)이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The Battle of Hastings)에서 승리하여 영국을 정복하면서 봉건 귀족들을 대부분 노르만족 출신의 가신들로 채웠기 때문에 유럽 대륙의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다. 제한되어 있는 소규모의 영토에서 국왕과 귀족들은 협력체제를 구축할 수 밖에 없었고 그 협력체제는 중앙집권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백년전쟁 초반 영국이 프랑스에 대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중앙집권화에 성공한 덕택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절대주의체제는 장미전쟁에서 승리한 튜더(Tudor)왕조 시기에 가장 확고했다
참고 자료
박상섭, 『 근대국가와 전쟁 』, 나남출판, 1996
피터 솔웨이 등, 영국사연구회 역, 『 옥스퍼드 영국사』, 한울아카데미,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