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유럽-발칸의 화약고 코소보사태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0.05.29
- 최종 저작일
- 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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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코소보사태에 관하여 정리한 레포트입니다.
코소보 사태의 원인과 전개, 영향과 향후 전망에 관하여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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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작열하던 유고연방에서의 포성이 멎었다. 폐허의 고향 코소보로 돌아가는 세르비아인들이 줄을 잇고 있다. 유고령 코소보에서의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 사이의 해묵은 민족갈등 문제를 둘러싸고 나토와 유고연방간에 벌어졌던 두달 반 동안의 가공할 전쟁은, 나토의 「코소보평화안」을 밀로세비치 유고 대통령이 받아들이는 형태로 항복함으로써 막이 내렸다.
지금부터 코소보 사태의 원인과 전개, 영향과 향후 전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코소보 전쟁의 역사적 배경은 4세기 부터 시작된다. 당시 로마제국이 양분되면서 서로마제국은 카톨릭, 동로마제국은 정교를 채택했다. 이들 양대세력이 만난 곳이 구유고연방의 한가운데였다. 서쪽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카톨릭, 동쪽의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등은 정교를 신봉했다. 14세기에 오스만 터어키제국이 유럽쪽으로 서진하면서 발칸반도는 그 지배하에 들어갔고 이후 500년간 통치를 받았다. 이 때 보스니아의 슬라브족들은 회교로 개종했고 알바니아인들도 이를 받아들였다. 이 알바니아인들이 인접지역인 코소보로 대거 이주하게 된다.
코소보지역에서 알바니아인들이 압도적 수를 차지하게 된 것은 17세기 부터였다. 1698년 코소보지역에서 오스만 터어키제국의 통치에 저항해 세르비아인들이 일으킨 반란이 실패한 이후 이 지역에서 세르비아인은 소수민족으로 전락했다. 이 때 코소보지역의 알바니아인들은 충실한 이슬람들로 오스만 터어키제국의 보호 아래 압도적 인구 구성비를 이루게 되었다. 그로부터 2세기가 흐른 후인 1875-78년 사이에 오스만 터어키제국이 해체되면서 세르비아는 코소보를 장악하려 침공했다. 그러나 코소보지역내 알바니아 민족주의의 강한 저항에 부딪쳐 심각한 유혈사태를 초래했다.
그 뒤 1912년의 발칸전쟁에서 세르비아는 성공적으로 코소보를 정복, 합병하고 많은 이슬람 알바니아인들을 추방했다. 세르비아인과 몬테네그로인들로 구성된 슬라브계 기독교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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