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항쟁
- 최초 등록일
- 2002.05.13
- 최종 저작일
- 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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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유신체제의 붕괴 - 10·26사건
가. 10·26사건의 정치적 배경
10·26사건은 기본적으로 유신체제의 지배집단과 국민사이의 대립관계에 의해 야기된 정치적 돌발사태였다. 유신체제는 안보라는 미명아래 언론·출판·집회·결사·사상·학문·양심의 자유 등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국민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상당부분 억압한 전형적인 군사독재체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 특히 지식인층의 불만이 날로 고조되어온 197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는 변혁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유신체제가 중대한 위기에 봉착했다는 뚜렷한 징후는 1978년 12월 12일 실시된 제10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충격적으로 드러났다.
이 선거에서 집권 공화당은 엄청난 규모의 금권과, 관권을 동원하고도 불과 유효표의 31.7%를 득표한 반면에 야당인 신민당은 그보다 1.1%가 많은 32.8%를 획득했으며 통일당이 7.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박정희라는 절대권력자를 위해 만든 유신헌법과 국민의 기본 생존권을 희생시키던 불합리한 정치체제와 경제정책에 대해 국민은 엄중한 경고를 내린 것이다.
제10대 총선결과는 유신정권의 유화책을 이끌어내어 김대중 전 신민당 대통령후보가 1978년 12월 27일 형집행면제로 석방된다. 그리고 1979년 5월 29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선명야당을 표방하는 김영삼 - 김대중의 연합세력이 신민당의 지도부로 나섬으로써 국민대중에게 큰 희망을 줌과 동시에 유신정권에게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조성했다. 그리고 이같은 대중의 희망과 유신정권의 위기속에 1979년 하반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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