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와 서동설화
- 최초 등록일
- 2010.05.28
- 최종 저작일
- 2008.05
- 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미륵사와 서동설화에 관한 이야기.
목차
없음
본문내용
미륵사는 한국 석탑의 시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당시의 백제문화가 전반적으로 또 다른 차원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미륵사의 창건은 백제의 미륵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데 미륵사라는 사원공간 전체에서는 탑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미륵사를 조성하고 거기에 대탑을 세운 시기가 못에서 미륵삼존이 용출한 데에서 비롯된 것은, 법화경에서 탑의 용출과 같은 맥락의 수사적 표현이다. 더욱이 미륵이 법화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점이나 미륵사의 거대한 탑의 건립의 사상적 배경이 법화경의 조탑공양과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삼국유사』 무왕 조는 완전한 하나의 불교적 상징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동의 신분은 빈천하나, 그가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태어날 수 있었던 데에는 용의 정기를 받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용은 설화 후반부에서 출현하는 미륵삼존과 수미쌍관을 이루는 미륵불과 관련된 용이다. 서동이 용의 아들이라는 전제는, 결국 미륵사라는 거대한 가람을 지어 불법을 홍포하는 대역사의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암시가 깔려 있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는 미륵선화와 연관을 가지며, 미륵인 불교신앙과 선화인 토착 신앙을 아울러 갖춘 무불 융합신앙을 상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당시 백제가 미륵신앙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하고 있었기에 이런 설화가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선화공주가 진평왕 부부의 딸로 설정된 것도 그들이 석가의 부모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었을 정도의 열렬한 불교적 신앙을 서동설화에 반영한 것이다. 서동설화의 본질은 불교적 상징이기 때문에 당시 백제와 신라 사이의 원수관계는 별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한 현실적 차원은 더 높은 차원의 불교적 상징으로 대체ㆍ승화되어 표현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