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교육] 금정산성 금성동에 대한 조사

등록일 2002.05.12 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800원

목차

1. 연혁
2. 공공기관
부산교육원
부산학생 야영수련원
3. 산천
금정산(金井山)
가장골
고당봉
곤실내
담짓골
동문골
두꺼비골
무제바위
사시골
암벽(岩壁)고 암굴(岩窟)
나비바위와 부채바위
4. 명승고적
금정산성(金井山城)
국청사(國淸寺)
산성의 4개 망루(望樓)
산성막걸리
미륵사(彌勒寺)
해월사지(海月寺地)
5. 민속
6. 자연마을

본문내용

1. 연혁
금성동은1740년 간행된 《동래부지》에 의하면, ‘산성리는 관문에서 18리에 있다’고 서술되어 있으므로 조선중·후기에는 북면에 속하였다. 그러나 갑오 관제개혁 이후에는 양산군 좌이면에 속하기도 하였고, 그 후 동래군 서면에 속하기도 하였다. 일제때도 부산부 좌이면에서 동래군 좌이면으로 다시 1918년에는 동래군 구포면 금성리로 행정관할이 옮겨다녔다.1963년 부산시의 직할시 승격과 동시에 부산시로 편입되어 부산진구 금성동이라 하였으나 1975년 북부출장소가 설치되자 이의 관할아래 들어갔으며, 1988년 금정구의 분구로 금정구에 소속되었다.
금성동이란 명칭은 금정산성안의 동네라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금정산성은 사적 제215호인 우리나라 최대의 산성이다. 금정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성되었을 것이라는 흔적은 있으나, 오늘날의 성은 조선시대성의 건설논의에 따라 건설되었다. 효종 때 동래부사 임의백이 금정산에 성을 쌓을 것을 건의하였고, 현종8년(1667) 현종이 통제사 이지형을 불러 왜구를 방어할 책략을 말하는 가운데 꺊北ㅋ遠 형세가 절승하여 기지가 완연하여 이제 만약 완전히 보수하기만 하면 보장할 수 있는 터전이 되겠습니다 고 하였으나 이후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숙종 때 영의정 허적은 승지 권대재의 견해를 빌어 ‘동래에서 불과 15리 떨어진 곳에 왜관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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