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사림의 대두와 붕당 정치

등록일 2002.05.12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1) 사림의 대두
(2) 사화: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의 대립

본문내용

(2) 사화: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의 대립
① 무오사화(연산군) → 사림 큰 피해
무오사화의 근본 원인은, 성종 때 사림들이 중앙 정계에 대거 등장하면서 기성 세력인 훈구파와 학문적, 현실적 입장의 차이로 대립한 데 있었다. 이러한 양파의 대립이 사초문제를 계기로 이른 바 사화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사초 문제가 발단 이 되었다는 점에서 무오사화는 특별히 무오사화라고도 한다. 즉, 사림파의 거두 였던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을 제자인 김일손이 사초에 수록한 것을 이용하여 무령군 유자광, 좌찬성 이극돈 등 훈구파가 사림파를 싫어하던 연산군을 충동하 여 일으킨 것이 바로 무오사화였다. '조의제문'은 의제를 죽인 항우에 빙자하여 단종을 죽인 세조를 은근히 비난한 내용이었다.
무오사화로 이미 죽은 김종직은 부관 참시(관을 열어 그 시체의 목을 베는 극형) 를 당하였고, 김일손(능지 처참) 등 다수의 사림들이 처형되거나 유배당하였다. 이로써, 사림파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정권에서 배제되어 그 기세가 크게 꺽이 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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