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학정신] 건국대학교 건학정신과 대학생활

등록일 2002.05.11 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1. 상허 유석창 박사의 생애
1) 유년기
2) 소년기
3) 청소년기
4) 청년기
5) 장년기
6) 노년기
2. 상허 문화 재단(常虛 文化 財團)
3. 건국대학교의 교시(敎是), 교화(敎花), 교목(敎木)
4. 참고 자료

본문내용

1. 상허 유석창 박사의 생애

1. 유년기(1900년-1908년)

상허 유석창 박사는 1900년 3월 17일 함경남도 단천군 수하면 용원리 망상골에서 유승균, 홍숙경 사이에 2남 3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가 푸른 물에서 하늘로 치솟아오르던 용이 던져주는 푸른 여의주를 치마폭에 받아앋는 태몽을 꾸고 상허를 낳았다고 한다. 상허가 출생하던 당시에는 세계의 열강들이 팽창주의의 사조에 휩쓸렸고, 그 와중에 일본도 끼어들어 우리나라를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상허 유석창 박사가(이하 상허) 돌이 되었을 때 누이와 함께 이웃 집에 자신의 돌떡을 누이와 함께 돌렸는데, 누이가 들고간 떡그릇을 받아 상허가 내밀자 이웃 아낙네들이 기특하게 여기며 칭찬이 떠들석하였다. 돌무렵에 이미 상허의 총기가 빛나고 있었다. 상허는 총기가 뛰어날뿐만 아니라 몸도 튼튼하고 장난기와 호기심이 많은 개구장이였다. 짚신, 버선이 하루를 못 견딜 정도여서 그의 누이와 어머니는 매일 버선을 기우고, 바지를 덧대야 했다. 상허가 여섯 살 되던 해인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이 맺어지면서 민족의 수난은 시작되었다. 상허는 아버지로부터 지금 나라가 처한 상황과 여러 민족 투사들의 독립활동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또래의 아이들과는 달리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훗날 상허의 지식보다 인격을, 기능보다 기개를 더 중시하는 교육이념은 그를 가르친 아버지의 인품과 기품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상허가 여덟살이 되던해에 이준 열사가 순국하자 상허의 아버지는 식음을 전폐했고, 이를 본 상허도 한지에 대한제국황태자(大韓帝國皇太子)라고 써놓고 큰 울음을 터트렸다. 이듬해인 1908년초에 상허의 가족은 상허에게 신식교육을 시키기위해 교향 망상골을 떠났다.

참고 자료

1987, 박기용, 나라기획, '조용한 혁명을 위하여'
www.konkuk.ac.kr (건국대학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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