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총
- 최초 등록일
- 2010.05.21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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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패총에 대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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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원시인(原始人)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질이 쌓여 층(層)을 이루고 있는 유적(遺蹟). 일명 조개무지. 패총을 남길 정도로 대량의 조개를 잡아먹는 생활은 유럽에서는 중석기시대(中石器時代)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말경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패총의 층 가운데는 함께 버려진 토기(土器)ㆍ석기(石器) 등의 유물이 함께 나오고 있어 유물 포함층의 특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개 버려진 장소는 주거지(住居地)의 가까이에 있었으므로 패총 아래에 주거지가 있거나, 온돌지(溫突址)가 나오는 경우와, 매장된 인골(人骨)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조수어골(鳥獸魚骨)이나 골각기(骨角器)를 보존하고 있는 점과, 비교적 단시일에 패총이 형성되기 때문에 층위학적(層位學的) 연구에 유리하며, 고고학적(考古學的) 조사의 좋은 대상으로 주목된다.
이와 같은 패총은 조개를 잡아먹기 편리한 물가의 주거지에 형성된다. 특수한 경우에는 담수산(淡水産) 조개도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발견되고 있지 않으며, 모두가 바닷가(海岸)에 남아있다. 현재 패총의 위치가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해안선(海岸線)이 이동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니, 양산(梁山) 패총이 해안선에서 약 40㎞나 떨어진 높은 언덕 위에 있음은 좋은 예라 할 것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1907년 일본인 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최초로 조사 발굴한 김해조개무지를 위시하여 함북 웅기, 함남 북청(北靑), 황해도 몽금포(夢金浦), 경기도 덕적도(德積島), 경남 웅천(熊川) ·고성(固城) ·양산(梁山) ·마산(馬山) ·동래(東萊) ·부산 동삼동(東三洞), 경기도 옹진군(甕津郡) 시도(矢島) 등의 조개무지가 대표적이다. 이들 한국의 조개무지는 신석기시대에 형성되었다가 농경생활이 본격화되어간 청동기(靑銅期)시대에는 거의 형성되지 못한 것 같으며, 어업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철기시대에 들어와 김해 ·웅천 ·양산 등 경남지방에 그 유적을 남겼다. 이 가운데 김해에서는 왕망(王莽)의 화천(貨泉)과 유리로 만든 조옥(棗玉)이 발굴되어 대륙과 교역을 한 사실을 알려주었고, 탄화미(炭化米)가 출토되어 벼농사의 역사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또한 웅기조개무지에서는 온돌지(溫突址)가 발굴되어 고대인들의 난방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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