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리말
2. 작가연보
3. 「서시」와「참회록」을 통해 본 자아성찰
4. 「십자가」를 통해 본 희생정신
5.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한국인에게 있어 윤동주라는 이름이 가지는 존재감은 크다. 그는 평생 단 한 권의 시집만을 사후에 출판했을 뿐이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의 한 조사에서 그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1위로, 그의 대표작인 ‘서시’는 20세기의 가장 훌륭한 시 1위로 뽑히기도 하였다. 이처럼 윤동주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시인 중의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동주에 대한 자료는 많이 부족한 편이다. 물론 윤동주에 대한 연구는 지속되고 있으며 많은 양의 ‘윤동주론’이 발표되어 있으나 작가가 스스로 기록한 일기, 서간문 등 작가의 내면을 알려줄만한 자료들은 대부분 유실되어 있는 상태다. 친구나 후배들이 남긴 기록에 의존하여 윤동주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덧붙여 일본유학 시절에 지었을 많은 시들이 체포 당시 압수당해 유실되었기에 우리는 그의 모든 작품을 다 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윤동주에 대한 연구는 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에 집중 될 수밖에 없다.
윤동주에 대해 그가 저항시인인지 아닌지, 기독교 시인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논쟁이 있어왔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을 쓰면서 주변의 환경과 자신의 사상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에 식민지의 양심적 지식인으로서 적극적으로 항일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작품에 저항 정신이 나타날 수 있고, 기독교인으로서 종교적 신념이 시에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를 저항시인, 기독교시인 등으로 틀 지우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볼 때 무의미한 일이라 생각된다. 이에 본고에서는 윤동주의 대표작들을 통해 작품 자체에 드러나는 작가의 생각을 유추해 보는데 중점을 두기로 하였다. 이 작은 한 권의 시집을 통해 윤동주가 세상에 말하고자 하였던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된다.
2. 작가연보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에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파평 윤씨 영석(永錫)이고, 어머니는 김용(金龍)이다. 윤동주는 둘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여동생 혜원(惠媛), 남동생 일주(一柱), 광주(光柱)가 있다. 어려서부터 기독교 장로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으며 13세에 외숙 규암(圭巖) 김약연(金躍淵)으로부터 한학(漢學)을 배우기도 하였다. 명동소학교 시절에는 급우들과 『새동명』이라는 회람판 문예지를 등사본으로 간행하여 여기에 동요나 동시 등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18세에 「내일은 없다」,「삶과 죽음」,「초 한 대」등의 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용정의 은진 중학교에 재학 중 평양의 숭실 중학교에 편입하였으나 신사 참배 거부로 숭실 중학교가 폐교되자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학원 중학부에 편입, 졸업하였다. 주일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
참고 자료
□ 도서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인물연구소, 1978
김봉군 외, 『한국현대작가론』, 민지사, 1984
윤동주,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민음사, 1999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1』, 민음사, 2002
□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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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묵, 「윤동주론」, 『국어문학』19,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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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윤동주 시 연구」,『한국학논집』14,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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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트
www.yoondongj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