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가사 작품정리와 작가생애

등록일 2002.05.07 한글 (hwp) | 39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page1~4〔정극인〕
1)일생
2)대표작품
(1)상춘곡

page4~19〔정철〕
1)일생
2)대표작품
(1)성산별곡(星山別曲)
(2) 관동별곡
(3)사미인곡(思美人曲)
(4) 속미인곡(續美人曲)

page23~26〔송순〕
1)일생
2)대표작품
(1)면앙정가

page26~34〔조위〕
1)일생
2)대표작품
(1)만분가

page34~〔박인로〕
1)일생
2)대표작품
(1)태평사
(2)선상탄
(3)누항사

[허난설헌〕
1)일생
2)대표작품
(1)규원가

본문내용

1)일생

1401년 경기도 광주군 두미포 출생
1430년 생원시 합격
1453년 문과 급제, 종학박사
1481년 별세
저서: 상춘곡, 불우헌집

<상춘곡>을 지어 조선조 가사문학을 형성시켰고 호남가단을 일궈낸 비조로 국문학사에 길이 남아있는 정극인은 정치가·행정가·문학가로서의 위치보다는 ‘지조있는 선비’로서 몫을 다했다.
그는 1401년 8월 1일, 영광에 본향을 둔 경기도 광주군 두미포에서 7형제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타고난 재질이 순했고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7세 때는 場屋의 首冠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29세에 생원시에 합격,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며 동료들의 큰 기대를 모았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20여년 동안 수차례 과거에 응시할 때마다 실패하곤 했다.
이즈음 세종은 불교에 큰 관심을 갖고 태조가 창건했던 흥천사(정릉)를 한양 서쪽에 중건하려 했다.
이 거대한 공사를 농한기도 아닌 때에 실시, 백성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치게 했을 뿐 아니라 불교장려책으로 스님들이 도성과 궁궐을 마음대로 출입해 국고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때였다. 이에 대해 조정대신들은 묵묵부답이었고 대간들이 상소해 논쟁하였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 37살 되도록 급제를 못하는 이름 없는 선비로 성균관 한쪽 방을 차지하고 있던 정극인은 임금께 상소를 불쑥 올린다. “불교를 더 비호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세종은 이 버릇 없는 선비가 괘씸해 무시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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