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린의 대표작 감상과 채플린의 생애
- 최초 등록일
- 2010.04.12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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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채플린의 대표작 감상과 채플린의 생애에 관한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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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영화는 채플린이 태어나던 바로 그 해에 발명되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움직이는 사진을 보고서 말문을 잃을 정도로 매우 놀랐다. 그러나 그 당시 영화는 겨우 몇 분 동안 상영 되는게 고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1913년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히 높은 수준에 올라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화가 일시적인 유행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생생한 쇼를 대신해줄 오락거리는 없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스튜디오는 오늘날처럼 그렇게 정교하지 못했다. 채플린 전기인 <채플린, 그의 삶과 예술>에서 데이비드 로빈슨은 찰리가 일하던 곳을 이렇게 묘사해 놓고 있다. “좁은 면적이 초록색 판자로 둘러싸여 있었다. 가운데 있는 무대 위로는 햇빛을 널리 퍼트리는 하얀 천이 드리워져 있었다. 조금 손본 농가는 남자들의 탈의실로 사용되었다.
당시 영화는 소리가 없었다. 간혹 규모가 작은 오케스트라를 도용해서 적절한 분위기를 내는 정도였다. 조명이 없었기 때문에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찍을 때는 야외의 햇빛을 적당히 이용해야했다. 그래서 많은 장면이 스튜디오 밖의 정원이나 거리에서 촬영되었다.
채플린은 케이스턴 영화사의 제안에 몹시 흥분이 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연극이 아닌 영화에서 연기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웠다. 이제까지 그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코미디언이었던 것이다. 스튜디오를 직접 눈으로 보고 난 그는 완전히 용기를 잃고 말았다. 그의 코미디는 항상 리허설과 신중한 시간계산, 그리고 정확한 효과를 계획하고 나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케이스턴에서는 그처럼 섬세한 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채플린은 그대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는 몇 주 동안 계속해서 촬영장을 배회하며 영화를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이 새로운 매체를 습득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이 그가 영화배우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이었다. 1914년 2월에 개봉된 채플린의 첫 번째 영화는 ‘생활비를 벌다(Making a Living)’라는 제목의 약 15분짜리 필름이었다.
참고 자료
‘채플린’ -팜브라운 저서 ‘채플린 그의 삶과 예술’-채플린 전기
‘채플린으로 보는 고전 영화사’-교원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