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의 돌다리 줄거리
- 최초 등록일
- 2010.03.24
- 최종 저작일
-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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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태준의 돌다리 줄거리
목차
이태준,「돌다리」
※ 단어 풀이 ※
본문내용
이태준,「돌다리」
정거장에서 샘말 십리 길을 오다보면 마을에 앞서 공동묘지가 먼저 뜨인다.
창섭은 잠깐 걸음을 멈춰 그 무덤 어디쯤을 짐작해 보며 ‘창옥아’를 부르며 목례를 보냈다. 지금도 눈에 선한 창옥은 나이가 훨씬 떨어진 하나밖에 없는 누이였다. 창섭이 내려와 있던 여름 방학이었다. 창옥이 저녁 먹다 말고 갑자기 복통을 호소해 읍에서 의사가 와 주사를 놓고 갔으나 밤새 열는 내리지 않고 새벽엔 고통이 더 심해졌다. 다시 의사를 데리러 갔으나 바쁘다는 핑계에 환자를 데려 갔으나 역시 오진을 하고 말았다. 하루가 지난 후 손 쓸 수 없게 되었을 때 맹장인 것을 알았다.
창섭은 이렇게 허무한 누이의 죽음에 자기가 어른이라면 의사의 멱살이라도 쥐고 싶었고, 아버지가 권하는 고농(高農)이 아닌 의전을 들어갔고 지금은 서울에서는 알아주는 맹장수술의가 되었다.
쌀쌀한 날씨에다 오후차로 돌아가야 해 걸음을 재촉했다. 길은 그 전보다 바닥도 탄탄하고 넓어졌기에 정거장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왔어도 좋았을 걸 하였다.
창섭의 아버지는 윗대에서 물려온 재산이 그런대로 있었고 아버지가 근검하신 분이었으나 더 이상 재산은 늘리지 못하였는데 그것은 남의 것은 욕심내지 않고 내 것이라도 잘 지키겠다는 의지와 아들의 유학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절용해 쓰고 남은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는 품을 몇씩 들여서까지 비뚠 논배미를 바로잡기, 밭에 돌을 추려 바람맞이로 담을 두르기, 개울엔 둑막이 하기, 그러다가 아들이 의사가 된 후로는, 아들 학비로 쓰던 몫까지 들여서 동네 길들은 물론, 읍길과 정거장길까지 닦아 놓았다. 남을 주면 땅을 버린다고 여간 근실한 자국이 아니면 소작을 주지 않았고 소를 두 필이나 메고 일꾼을 세 명씩이나 두고 적지 않은 전답을 전부 자농으로 버티어 왔다. 실속이 타작만 못 하다는 둥 이해만을 따져 비평하는 소리가 많았으나 창섭의 아버지는 땅을 위해서는 자기의 이해만으로 타산하려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임자를 가진 땅들이라 곡식은 거둔 뒤, 그루만 남은 논과 밭이되, 그 바닥의 고름, 그 언저리들의 바름, 흙의 부드러움이 마치 시루떡 모판이나 대하는 것처럼 누구의 눈에나 탐스럽게 흐뭇해 보였다.(235쪽)
참고 자료
이태준, 돌다리, 깊은샘,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