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10.03.23
- 최종 저작일
-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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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진왜란에 대해서
목차
Ⅰ. 전란 이전의 한일양국
Ⅱ.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
Ⅲ. 양국의 국서
Ⅳ. 조선의 방비
Ⅴ. 임진왜란
Ⅵ. 명군의 참전과 강화
Ⅶ. 정유재란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전란 이전의 한일양국
인접국으로서 한일양국은 상고시대부터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일본의 고대문화를 논할 때, 많든 적든 한반도로부터의 문화 전파나 한반도 이주민의 존재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고려시대의 한 시기, 오랜 항전 끝에 몽골이 세운 원(元)에 패한 고려가 원의 지배에 놓여 원의 일본침공에 동원된 것을 제외하면 한일양국의 국가 간의 전면대결은 없었다. 고려시대 말기부터 한반도의 연안지역에 왜구의 피해가 컸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양국의 선린우호의 역사는 오랜 것이었다. 1392년, 사대교린(事大交?)을 외고정책으로 한 조선왕조가 성립된 뒤로 무로마치 막부와의 교린의 통교는 이전보다 훨씬 왕성하게 행해졌다. 무로마치 막부의 요청에 의해 일본과 국교를 재개한 조선조정이 일본과 통교하는 주요 목적은 왜구의 억제에 의한 한반도 남부의 안정에 있었고, 일본은 명과의 책봉체제 속에서 조선의 고려대장경, 쌀, 목면 등의 문물수입 목적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00년 간, 조선조정으로부터의 사절단이 회례 ? 통신 ? 보빙 등의 목적으로 빈번히 일본에 파견되었다.
당시, 조선의 지방관으로서도 인정되고 있던 쓰시마의 소씨에게 파견된 경차관(임시로 지방에 파견한 관직)까지 포함하면, 실로 62회에 달하는 시절단의 파견이 있었다. 그러나, 1467년의 오닌의 난 이후 일본이 전국시대에 접어들자 조선과의 확실한 교섭상대가 없어졌고, 게다가 1510년의 삼포왜란을 경계로 해서 양국관계는 소원해지고 있었다.
참고 자료
일본과 임진왜란, 고려대학교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