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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0.03.19
- 최종 저작일
-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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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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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향가(신라시대) 도솔가의 배경설화
Ⅱ. 향가(신라시대) 도솔가의 원문과 해독(소창진평, 양주동, 홍기문)
Ⅲ. 향가(신라시대) 도솔가의 작품이해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향가(신라시대) 도솔가의 배경설화
이 노래는 유사 권 5 월명사 도솔가조에 실려 있다. 경덕왕 19년 병자 4월 초하루에 두 개의 해가 나타나서 10일이 되도록 없어지지 않았다. 일관이 아뢰기를 "인연이 있는 스님을 청하여 散花功德을 지으면 재앙을 물리치리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제단을 조원선에 깨끗이 꾸며 놓고 임금이 창양루에 나가 앉아서 인연이 있는 스님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마침 월명사가 언덕 남쪽 길로 가고 있었다. 임금이 그를 부르라 하여 제단을 열고 의식을 시작하게 하니, 월명사가 아뢰기를 저는 다만 화랑의 무리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오직 향가만 알 뿐이고 범패노래(讀經)는 아직 못합니다 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인연 있는 스님이 되었으니 향가를 쓰더라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월명사는 이 말을 듣고 도솔가를 지어 불렀다. 경덕왕 19년(760)에 지은 월명사의 작품이다. 민요 형식의 노래였으리라고 추측되며 유리왕 때의 도솔가에서 볼 수 있듯이 노래의 형식 이름이라고 하겠다. 내용 중 미륵 부처의 힘을 빌리는데, 불의 상징인 해(군주의 상징 : 시중이었던 김양상이 후에 선덕왕으로 증위한다)가 둘이 되자 물의 상징인 미륵을 모시고자 함이다. 여기서 미륵을 우리말 `미리 = 용`과 관련시켜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도 있다. 또한 귀족의 화엄사상과는 다른 월명사와 같은 국선지도의 미륵사상을 새로운 지지세력으로 삼고자 했다고 보여진다.
Ⅱ. 향가(신라시대) 도솔가의 원문과 해독(소창진평, 양주동, 홍기문)
도솔가는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들 가운데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있다. 다른 노래들에서는 볼 수 없는 해시(解詩)가 이 노래에는 붙어 있기 때문이다. 해독의 세계에서 다른 언어로의 번역이 첨부되어 있다는 것은 가히 천군만마의 존재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저 샹폴리옹의 로제타 스톤 해독에 있어서도 희랍어 번역의 병치가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것을 상기할 일이다.
참고 자료
나경수 - 향가의 해부, 민속원
임기중(1998) - 새로 읽는 향가문학, 아세아문화원
양희철(1997) - 삼국유사 향가연구
장진호(1993) - 신라 향가의 연구, 형설출판사
정렬모(1999) - 향가 연구, 서울 한국문화사
최철(1985) - 향가의 문학적 연구, 새문사
홍기삼 - 향가 설화 문학, 믿음사